요즈음 일부 어린이 학원에서는 '할아버지의 직업'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이 한 마디면 다른 질문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일만 보면 비싼 수업을 계속 받을 수 있을지 각종 해외연수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기 때문이란다. 사교육 시장에서 할아버지의 재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교육에 있어서는 할머니들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젊은 50, 60대 할머니들이 손자들의 교육판에 뛰어들어 왕년의 솜씨를 과시(?)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보력이 뒤지는 직장인 며느리를 대신해 각종 교육정보를 모으고 유명 학원을 섭외하는 등 손자 교육에 직접 나서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서울의 부잣집 동네에는 '예비 할머니 교실'까지 열려 신생아 관리에서부터 육아까지 가르쳐주고 있다고 한다. '맹모'보다 더한 '맹조모'의 출현이다.
이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의 능력이 강조되면서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도 들린다. ' 집안의 실세를 알려면 어린 손자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면 된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갯소리다. 휴가철을 앞둔 지금, 올해는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자는지를 묻는 손자의 전화를 받는다면 당신은 '집안의 실세'란다. 또 손자가 비싼 장난감을 사달라거나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틀림없는 집안의 돈줄이며,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자고 자주 조른다면 당신은 확실한 재력가라고 믿으면 된다는 얘기다. 아이들이 먼저 '실세'를 알아보기 때문이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역할은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구수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돼야 괜찮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모양이다. 경제력이 된다면 손자의 학원비를 대주고 비싼 장난감이나 옷을 사주는 것은 노년의 재미이며 즐거움일 수 있다. 문제는 손자들에게 용돈조차 주기 어려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그들은 손자로부터 전화받은 지가 오래됐을뿐 아니라 얼굴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고 하소연한다. 손자와 하룻밤 자보는 것은 그야말로 꿈 같은 소리란다.
최근 보건복지가족부는 한국의 노인 한 달 평균 소득이 69만원이라고 발표했다. 손자들에게 용돈 한번 쥐여줄 형편이 못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수두룩하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겪을 마음고생에 가슴이 무겁다.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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