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로 된 플라스크에 물을 끓인다고 치자. 불을 붙인 뒤 처음 한동안은 별다른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 조금씩 플라스크 안의 물이 더워지면 서서히 보글보글 물방울이 솟기 시작하고 김이 스며 나온다. 그러나 그 정도에서는 '위험해 보이니까 밑불을 꺼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주의를 끌지는 못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별 탈 없겠지 하고 내버려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물의 온도는 급속도로 沸騰點(비등점)에 도달하고 이른바 '싱귤러 포인트'(Singular Point)에 닿는 순간 플라스크는 깨진다.
지금 政爭(정쟁)과 파업과 시위와 폭력이 뒤범벅된 이 나라가 마치 플라스크 안의 끓는 물처럼 싱귤러 포인트를 향해 치닫고 있는 형세다. 사회학자들은 싱귤러 포인트(特異點=특이점)를 혁명 등 亡國(망국)의 한계 위험점으로도 해석한다. MB정권이 아직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위태위태해 보이는 것도 나라 꼴은 싱귤러 포인트를 향해 곳곳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데 沸騰의 근본 원인인 밑불을 적절한 타이밍에 빼내고 식혀 줄 정치적 위기 대처 능력과 역량이 부족해 보여서다. 거기다 역사학자들이 지적했던 이런저런 망국의 징조들까지 도처에 나타나고 있음은 그런 불안을 더해준다.
좌와 우를 중도라는 이념적 修辭(수사)로 희석시켜 마치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어 보라색으로 만들면 사회 통합, 계층 화합이 된다는 듯한 이상한 구호를 꺼낸 것도 좌파의 소외감과 서민 계층의 가난만 덜어주면 반정부적 혁명은 없을 거란 自慰(자위)로 비쳐진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한 정답이 못 된다. 프랑스 혁명의 원인도 소외 계층의 가난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경제 외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歷史家(역사가) 가크 쇼트는 '프랑스 혁명'에서 쓰고 있다.
'혁명 전 프랑스는 (요즘의 악플처럼) 악질적인 냉소, 풍자, 파괴적인 가락이 범람했고 의회는 중학생의 싸움터를 방불케 했으며 박수와 고함의 광란 상태에다 걸핏하면 협박적인 구호를 외치며 침입(시위)하는 무리들이 발호했다.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을 무렵엔 군중 속에 적국의 선동분자까지 섞여 있었다….'
가크 쇼트의 말만 들으면 오늘날 지리멸렬 찢어지고 있는 망국적 국론 분열과 계층 이탈과 저항이 악플꾼들과 의회 탓이며 불법 시위꾼과 좌파 선동분자들 때문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淸(청)나라 曾國藩(증국번)이 말한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3가지 징조에 유의한다면 지금의 어지러운 난세의 책임과 해법은 둘 다 MB정권에 있다. 증국번은 '무엇이든 흑백을 가릴 수 없게 되는 것'을 첫 번째 망국의 징조로 꼽았다. 악에 영합하거나 맞대결 대신 도피하는 것으로 폭력 시위, 의회의 발목 잡기, 전직 대통령의 선동적 발언 공세에도 '나쁘긴 나쁜데…' 하면서 막상 맞부딪치면 대결 대신 엉거주춤, 과감한 흑백 가리기를 주저하는 유약함을 말한다.
두 번째 징조는 '선량한 사람들은 갈수록 조심스러워지고 무뢰한 녀석들이 더욱 설치는 것'이라 했다. 소수 좌파 무리들의 독설과 저주의 악플 테러는 지식인의 입과 붓을 움츠리게 만들고 보수들은 거꾸로 입 다물고 몸조심하는 분위기, 설치는 무뢰배의 숨은 뿌리를 못 뽑는 보수정권의 허약함은 망국의 조짐에 딱 맞는 오늘의 자화상이다.
세 번째 조짐은 문제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이것도 어쩔 수 없고 저것도 무리가 아니다며 쉽게 양보해 버리고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법안, 이 정책만은 밀고 가겠다고 했다가 반대가 심하면 '그게 무리한 건지도 모르겠네'라며 쑥 들어가 버리는 우유부단과 무소신을 말함이다.
지금 MB정권이 몸을 던져야 할 일은 중도 강화, 서민 정책 등 다급한 대로 이 깃발 저 깃발 흔들어 내보일 것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제대로 끝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걸 못 하면 MB정권이란 플라스크는 여기저기 미리 꺼버리지 못한 불꽃들에 의해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싱귤러 포인트까지 끓어올라 깨지고 나라는 또 난세가 된다. 어느 누가 그것을 원하는가?
金 廷 吉(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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