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춤과 노래로 그린 동심
지난해 3월 88세의 전직 독일공군 조종사가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자신이 생텍쥐페리(1900~1944)의 비행기를 격추시켰다는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1944년 7월 31일 오전 8시 30분 P38 라이트닝에 8시간의 비행 연료를 싣고 이륙한 이후 8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남방우편기'(1929년), '야간비행'(1931년), '전투조종사'(1942년) 등 비행기 조종사 작가로 활약한 그의 미귀환은 이후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았었다.
독일 조종사는 "내가 그 비행기를 쏴 격추시켰다. 만일 생텍쥐페리가 탄 비행기인 줄 알았으면 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텍쥐페리는 그가 좋아했던 작가였다. 이후 그는 평생 동안 이런 사실을 자책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생텍쥐페리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가 별이 쏟아지는 신비로운 밤하늘에 있을 것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어린 왕자처럼 이 별 저 별을 다니며 조그마한 양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삶에 대한 성찰을 시적으로, 동화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동심은 천심이라고 했던가. 순수한 동심을 인간이란 유기체의 사랑과 존재로 끌어낸 '어린 왕자'는 이후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어린 왕자'를 영화로 옮긴 것 중 최고는 진 켈리의 '사랑은 비를 타고'를 만든 안무가 겸 감독인 스탠리 도넌의 작품이다. 1974년 리처드 칼리, 스티븐 워너가 주연하고 안무가인 밥 포시 등이 출연해 아름다운 춤과 노래로 꾸민 뮤지컬 영화이다.
생텍쥐페리의 원작에 충실하며, 그 속의 동심 가득한 정서를 뮤지컬이란 장르로 소화한 걸작이다.
사막 한가운데 웬 아이(스티븐 워너)가 나타나 양을 그려달라고 한다.
마치 홀린 듯 비행사는 양을 그린다. 그런데 그려주는 양마다 '아파 보인다'느니 '늙었다'느니 퇴짜를 놓는다. 그래서 아예 조그만 구멍을 낸 통을 그려준다. 그제야 그 아이는 통 속의 양을 들여다보며 만족해한다. 종이에 그려진 작은 구멍.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구멍을 눈에 대고 자신의 양을 보고 있다.
동화라기에는 너무나 철학적인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곱슬곱슬한 금발에 초록색 긴 코트를 입고, 칼을 찬 아이. 아무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홀연히 나타난 이 어린 왕자는 우리 몸속에 잠자고 있는 무한한 상상력과 동심의 발로이다.
자신을 잊고 있던 비행사는 생텍쥐페리이며, 또 생활에 찌들어 동심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한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렸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던 그래서 피터팬처럼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없는 우리들이다.
'어린왕자'는 생텍쥐페리가 1943년 발표한 동화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철학적 성찰이 지구에 온 어린왕자를 통해 그려진다.
여러 별을 거쳐 지구까지 온 어린 왕자는 파란 빛의 살기 좋다는 별, 지구에 와서도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그때 여우를 만난다. "절대 잊지 마.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소중한 것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야."
그리고 홀로 두고 온 장미를 생각한다. 수백만 송이가 피어 있는 장미꽃밭을 지나며, 어린 왕자는 정말 소중한 것은 작은 별에 외롭게 놓아둔 자신의 장미라는 것을 깨닫는다. "미안해. 너를 그렇게 둬서. 이제야 알았어. 수백만 송이 장미보다 더 소중한 것은 단 한 송이의 장미. 바로 너란 것을"
생텍쥐페리가 각각의 존재가 아닌, 사람과 사람, 개체와 개체의 유대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인간의 대지'(1939년), '전투 조종사'(1942년)는 동료 비행사와의 관계, 조국에 대한 의무, 책임 등에 대해 깊은 성찰로 이뤄져 있다.
'어린 왕자'에서도 사랑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얘기하고 있다. 매일 물을 주고, 비바람을 막아주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사랑해 줘야 할 자신만의 장미처럼 말이다.
어린 왕자가 여행하는 별들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위선과 허무, 물질 만능 속에 살고 있는지를 우회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5억 개의 별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세는 상인이 나온다. 끊임없이 세기만 한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또 자기를 칭찬하는 말 이외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허영꾼, 술만 마시는 술꾼, 좁은 별에 금을 그어 편 가르기만 하는 왕 등 삶에 진정한 의미를 두지 않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 온 지 꼭 1년 되는 날. 자신의 별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보면 내가 그 별 중 하나에 살고 있고, 내가 그 별 중의 한 별에서 웃고 있으니까 아저씨에게는 모든 별이 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야."
생텍쥐페리가 지금도 밤하늘 가운데 어느 별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어린 왕자의 이 말 때문일 것이다.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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