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핵 유훈

입력 2009-06-15 10:51:22

2005년 6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방북한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비핵화 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을 했다. 김 주석이 과연 그런 유훈을 남겼는지에 대해 국내 정치권과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 유훈을 부정하는 인사들은 "김정일의 유훈 발언은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가려는 교란작전이며 김 주석은 실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 2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우라늄 농축 작업에 착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우라늄농축계획(UEP)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방북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을 추궁하자 북한이 적극 부인한 그것이다. 이번에 국제사회가 제재하겠다고 하자 태도를 바꿔 우라늄 농축을 대미 협박 카드로 꺼내면서 자연스레 시인한 것이다.

1994년 6월 김일성 사망 한 달 전 그를 만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김 주석이 핵 발전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밝힌 바 있다. 핵 발전에 대한 관심은 바로 핵무기에 대한 집착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핵 집착은 이미 195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쿠바 사태를 계기로 김일성은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지시하면서 구체화됐다. 영변 원자력시설에서 근무하다 1994년 이탈한 한 탈북자는 "1962년 김일성이 핵 단지를 조성할 때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지금 북한에는 고급 핵심 인력 200여 명을 비롯해 3천여 명의 최우수 인재들이 핵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김일성 부자의 비호 아래 최고 대우를 받아온 이들이 지난 40년 동안 놀고먹었을까. 플루토늄이든 우라늄 농축이든 북한은 꾸준히 준비해왔다는 사실을 이번 UEP 공식 발표에서 우리는 확인했다. 북한이 부르짖고 있는 2012년 강성대국은 바로 핵의 완성을 의미한다. 핵 보유국은 북한의 국가 목표인 것이다.

핵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UEP를 공식화한 것은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거의 완성됐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북한 정권은 김일성 유훈까지 들먹이며 '핵 진실게임'을 벌여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새빨간 거짓말임이 비로소 증명된 것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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