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규 넷솔테크 대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지한 고민이 젊은 날 꼭 이뤄져야 하죠. 그때의 선택이 인생이 되는거니까요." 강동규(44) ㈜넷솔테크(Netsoultech CO.,LTD) 대표. 40대에 연매출 100억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젊은 사업가다.
그에게 여기까지 오게 된 배경을 설명해달라고 주문하자 대학 졸업 직후의 얘기를 들려줬다. 강 대표는 경북대 전자과를 졸업한 뒤 기술고시를 준비했다. 쉽지 않았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번뇌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 오로지 자기 내면만을 응시하고 싶었다. 일본, 중국에 6개월간 배낭 하나 짊어지고 유랑했다. 큰 세상을 봤고 작은 자신을 실감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만을 고집스레 생각했다.
#첫 직장은 중소기업
1993년 강 대표는 상경했다. 기술고시는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여겼고 포기했다. 그는 콤텍시스템이라는 유망 중소기업에 입사했고 금융권 솔루션 사업부에 들어갔다. 8년을 줄기차게 일했다. 낮과 밤을 구분하지 않았다. 꿈이 있었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야할 때라고 여겼다.
"한창 일하고 있는데 한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습니다. 갑(甲)의 입장에 있던 회사였죠. 선배들은 옮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지만 을(乙)의 입장에서 갑에 자기 사람 한 명 있는 것도 좋다는 얘기를 해주기도 했어요. 그래서 마음을 굳혔죠."
큰 곳으로 옮겼다. 사내 그룹망 인프라 사업팀장이 됐다. 기회는 많았다. 그룹망의 속도와 형식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시키자 직원들이 "편해졌다"고 칭찬했다.
#대기업 이직했다 독립
그는 수만 가지 자료를 한 데 집대성한 뒤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회사 경영진이 원하는 자료를 툭 치면 톡 튀어나오게 할 수 있을까. '포부는 컸지만 역시 조직 내에서는 튀면 밟혔다. 일을 찾아다니자 오지랖도 넓다는 비난이 자신을 향했다. 그룹망 사업팀이 한 그룹의 전산실 수준이니 발전이 없다고 걱정했다. 그러다 두 눈 질끈 감고 회사를 뛰쳐나왔다.
"마음껏 내 일을 해보자." 그의 선택은 옳았다. 2억원의 자본금으로 ㈜넷솔테크를 인수했다. 연매출 5억원대의 실적이 거의 없는 회사였다. 하지만 강 대표는 9명의 직원을 승계했고, 인수 첫 해 20억원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세종텔레콤에 통신 장비를 공급했고, 이어 대우증권, 한국투자증권, 한화증권, 교보증권의 통신망을 뚫었다. 집에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홈트레이딩 시스템도 개발했다.
강 대표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도 있지만 도둑질도 업그레이드 해보자 생각했죠. 두 곳의 회사를 거치는 동안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했던 것이 큰 성과를 이루게 됐습니다."
#직원을 친구로 대접해
사업은 확대일로에 있다. 20억 매출의 회사는 지난해 80억원을 넘겼고, 올해는 100억원이 목표다. 직원은 30명이 넘는다. 그는 '중소기업은 사장이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사장을 먹여살린다'는 생각에 직원들과 친구처럼 지낸다. 강 대표에게 직원은 미래 가능성이며 곧 수익이다. 그래서 상장은 안 한다. 상장하면 직원들에게 돌아갈 파이가 적어진단다.
고향에 대한 생각도 잊지 않았다. 김천 출신으로 모암초, 김천중앙중, 김천고, 경북대를 나왔다. "언젠간 지역으로 내려가야죠. 대구에서 산학협동팀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앞으로 정보화 사회에 꼭 필요한 암호화 모듈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싶거든요. 잘만 되면 대구'경북권 미래도 밝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꿈을 현실로 바꾼 그의 말에 힘이 넘쳤다. 믿음이 갔다.
글'사진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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