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공장을 세울 때 秘話(비화)다. 과장됐을 수도 있겠지만 여러 경로로 들은 만큼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대구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이 회장은 성서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하고 대구시 공무원을 만났다. 이 회장으로부터 반도체 사업에 대해 한참 설명을 들은 이 공무원은 "회장님, 도대체 반도체가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실망한 이 회장은 대구가 아닌 경기도 기흥에 공장을 세웠다는 것이다. 시가총액 83조 원짜리 삼성전자가 대구를 등지는 순간이었다. 대구의 운명이 곤두박질치는 순간이기도 했다. 반도체로 도시 전체가 먹고살다시피 하는 지금의 수원을 보면 대구 사람들은 가슴을 칠 일이다.
이 이야기를 두고 대구시 공무원들은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옛날 이야기이고, 지금은 대구시 공무원들도 다른 지역 못지 않게 확 달라졌다고…. 그러나 턱도 없는 말이다. 다른 지역에 있는 기업을 지역에 유치하는 것은 고사하고 지역 기업마저 떠나보내는 게 현실이다. 대구시 공무원들의 마인드와 일처리는 다른 대도시와 비교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다.
생생한 사례를 하나 들어 보겠다. 교육사업으로 전국에 걸쳐 입지를 굳힌 대구에 본사를 둔 한 기업은 교육로봇사업에 진출키로 하고 대구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그러나 공장 인허가 과정에서 대구시와 구청 사이에서 '핑퐁게임'이 벌어졌다. 구청에 가면 시청으로 가라 하고, 시청으로 가면 구청으로 가라는 식이었다. 그러던 차에 경기도테크노파크에서 로봇R&D센터에 공장을 짓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그 후부터는 하나부터 열까지 테크노파크 직원들이 업무를 다 처리해 줬고, 1년여 전 경기도 안산에 공장을 세웠다. 경기도 공무원들과 테크노파크 직원들이 너무도 잘해줘 부담스러울 정도였다는 게 이 회사 대표의 귀띔이다.
일하는 사람이 어떤 마인드를 갖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가 좌우되는 법이다. '하면 된다'와 '안 된다' 중 어느 마음이냐에 따라 그 결과가 확 달라지는 것이다. 대구시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만나면 일단 안 된다는 마인드를 밑바탕에 깔기부터 한다고 질타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대구가 부산'인천은 차치하고 광주마저 뒤쫓아야 하는 참담한 처지가 된 것은 지역 구성원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그러나 1만여 명에 이르는 대구시와 각 구'군청 공무원들의 책임은 다른 누구보다 더 크다. 대구가 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고, 각계각층의 힘을 모아 전진하도록 만드는 게 공무원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정무부시장을 할 때 대구시 공무원의 반기업 정서를 질타하면서 변화를 강조했다. 시장에 취임한 직후엔 공무원 사회 개혁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추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시장을 맡은 지 3년이 다 됐지만 공무원들이 확 달라졌다는 데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김 시장이 대구시 공무원 특유의 일 안 하고 책임지지 않는 풍토에 함몰된 게 아니냐는 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시급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들이 뒤로 밀리고, 일부 반발만을 우려해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학교만 나온 수도권에서 오래 활동했던 인사들을 요직에 잇달아 앉히는 흐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집단이든 열심히 일하는 10%는 있게 마련이다. 1만 명에 이르는 대구시 공무원 중 적어도 1천 명은 지역 발전을 위해 몸을 던져 일하고 있으리라 본다. 문제는 사사건건 이들의 발목을 걸고 넘어지면서 다 같이 일 안 하도록 주저앉히는 대구시 공무원 특유의 그릇된 분위기다. 이를 청산하지 않고선 공무원 사회의 개혁은 힘들다.
기업체에선 반나절에 끝낼 일을 대구시 공무원들은 2, 3일이 걸린다는 말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서류를 책상 안에 오래 방치하는 식의 '미루어 조지는' 행태도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구는 다른 도시들과 경쟁할 수 없다. 부패한 공무원은 몇억, 몇십억 원을 들어먹지만 무능하고 일 안 하는 공무원은 그 지역에 수조, 수십조 원의 피해를 끼친다. 대구시 공무원 모두가 냉철한 자기 반성과 함께 생각'행동을 확 뜯어고쳐야 한다.
이대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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