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선천성 담도폐쇄증 딸 둔 박재식씨

입력 2009-05-27 09:13:32

▲ 박재식씨의 간 이식으로 다시 생명을 얻은 딸 혜민이. 하지만 이후 박씨는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고, 아내 역시 선천성 대장질환에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지만 가난한 형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5년 전 수술 직후 찍은 모녀의 모습.
▲ 박재식씨의 간 이식으로 다시 생명을 얻은 딸 혜민이. 하지만 이후 박씨는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고, 아내 역시 선천성 대장질환에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지만 가난한 형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5년 전 수술 직후 찍은 모녀의 모습.

"가족들을 모두 보살펴야 하는 사람이 가장인데, 그 역할을 못하고 있는 제가 한없이 밉습니다."

귀여운 딸에 이어 사랑하는 아내까지 난치병에 걸린 데다 자신도 수술 후유증으로 몸이 허약해지는 바람에 어려운 생계를 속절없이 보고만 있어야 하는 박재식(45·문경시 점촌2동)씨. 그는 현재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한 달에 63만원의 생계비를 지급받고 있지만 가족들 약값을 빼면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생계가 막막한 처지다.

건강을 잃기 전 박씨는 전국 식육점에 문경산 한우고기를 나르는 유통사업을 했다. 월 평균 5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릴 정도로 벌이가 좋았고, 하루 평균 450㎞의 거리를 트럭으로 다닐 정도로 건강했다.

박씨의 가정에 시련이 시작된 것은 5년 전 딸 혜민이를 낳고부터다. 혜민이는 선천성 담도폐쇄증을 갖고 태어났다. 담도폐쇄증은 담도가 없어 담즙이 장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간에 손상을 주면서 결국 간경화로 진행, 목숨을 빼앗아가는 무서운 병이다. 심한 황달 증세로 점점 얼굴이 노래지는 갓난딸에게 의료진은 간 이식 수술을 받지 못하면 '생후 50일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박씨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담당 의사는 "갓난아기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수술"이라며 집도에 난색을 표했지만, 박씨는 "내가 죽어도 좋으니 딸에게 내 간을 이식해 달라"며 딸을 안고 발을 동동 굴렀다. 수술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불행은 이어졌다. 정작 딸은 구해냈지만 박씨 자신이 간이식 수술 후유증으로 그만 건강을 잃게 된 것. 수술을 앞두고 가진 검사에서 위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이 발견돼 위 대부분을 들어내는 절제수술까지 받은 상태로 간이식 수술에 들어간 게 원인이었다. 이후 복수가 차고 탈장증세까지 겹치는 등 지금도 밥을 한 숟가락씩만 겨우 먹을 만큼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수술 이후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지만 박씨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는 혜민이와 고교 2학년생인 아들(16)의 학비도 벌어야 하는 등 네 식구의 생계가 자신의 어깨에 걸려 있었다. 잠시도 쉴 새 없이 다시 일에 나섰지만 몸이 쉽게 피로해져 차를 도로변에 세우고 잠이 드는 날이 늘어났다.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생업을 그만두게 된 박씨는 막노동과 농사일 등 다른 일자리도 찾아 보았지만 체력이 달려 지금은 노점상을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씨에게 최근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 그동안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말없이 생계를 거들어 오던 아내(39)마저 얼마 전 선천성 대장질환이 발병해 병원 신세를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저축해 둔 돈을 모두 병원비와 서울 오가는 경비로 써버린 터라 아내의 수술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온 가족이 병원치레를 한 후여서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빚만 수천만원. 손을 벌릴 데도 없고, 도와달라고 입을 뗄 면목도 없다.

한창 일하며 행복을 일궈야 할 나이인 박씨 부부는 연이어 닥친 가족들의 병마에 이제는 기가 막힐 뿐이다. 박씨는 "병원비와 생활비를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데 의지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아 너무 답답할 뿐"이라며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문경·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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