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야 놀자] 화폐는 경제의 혈액

입력 2009-05-26 06:00:00

물물교환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하려면 내가 구하는 물건을 가진 사람 가운데 내가 가진 것을 원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화폐는 이런 거래비용을 크게 줄여준다. 사람들은 화폐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얻기 때문에 화폐는 모든 자원을 필요한 곳으로 운반해 주는 경제 내의 혈액과 같다. 사람도 체구에 비해 혈액이 부족하면 빈혈증상이 나타나고 성장이 지체되는 것처럼 경제 내에서 유통되는 화폐, 즉 통화량이 부족하면 거래가 위축되어 생산과 성장이 억제되고(디플레이션), 통화량이 과다하면 물가가 상승하여(인플레이션) 경제의 건강을 해치게 된다.

화폐가 거래의 매개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폐의 일반적인 수용성은 아무렇게나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남태평양의 얍섬(Yap Island)에서 통용되었던 지름이 몇m에 달하는 둥근 돌 화폐를 보면, 화폐는 소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구성원들이 그것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폐가 일반적으로 수용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 중 하나는 충족되어야 한다.

첫번째는 화폐에 사용된 재료의 가치가 화폐의 액면가액을 보장해주는 경우다. 금화나 은화가 바로 그것이다. 1만원짜리 금화에 1만원어치의 금이 들어가 있다면 이를 마다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화폐를 발행하는 사람에게는 남는 게 없다.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시뇨리지(seigniorage)라고 하는데 시뇨리지가 없는 것이다. 시뇨리지는 중세의 영주(시뇨르·seignior)들이 화폐발행을 통해 이득을 챙긴 데서 유래하는데 화폐의 액면가액과 제조원가의 차이를 말한다.

화폐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조건은 절대권력에 의해 가치가 보장되는 경우다. 오늘날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는 법정지폐는 바로 국가가 보증하는 화폐다. 국가는 화폐발행권을 통해 엄청난 시뇨리지를 가지게 된다. 국가가 화폐를 발행하면, 그만큼 가치가 하락한 화폐를 보유한 국민들로부터 중앙은행으로 부가 이전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세금'(inflation tax)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대한민국(정확하게는 한국은행)은 원화 발행에 따른 시뇨리지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시뇨리지는 원화가 통용되는 국내에 국한된다. 이에 비해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시뇨리지를 누리고 있다. 아무리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커지더라도 정부의 파산이나 외환위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달러를 찍어내서 자국의 기업이나 금융기관을 무한정 지원해줄 수도 있다. 당연히 달러를 추가로 발행하는 만큼 달러를 보유한 국가의 부가 미국으로 이전된다. 물론 군사력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영수(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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