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피살·사법처리…대통령 취임이 곧 '비극 시작'

입력 2009-05-25 10:12:42

[제왕적 대통령제의 그늘] ①불행한 대통령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한국 대통령들의 퇴임 후는 늘 불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불행했던 한국 대통령사(史)의 정점을 찍었다. 퇴임 후 1년 3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할 정도로 우리의 정치 문화는 비극의 연속이다. 25일 가까스로 조문을 마친 김형오 국회의장은 "대통령의 불행은 나라와 헌정사의 불행"이라면서 "다시는 우리 역사에 이런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퇴임 후 온 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전직 대통령이 우리에게는 없다. 망명하거나 피살되고 혹은 사법 처리를 당하거나 가족들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4·19 혁명 이후 하와이로 망명했고, 윤보선 전 대통령은 세 차례나 사법 처리를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에게 시해됐고, 최규하 전 대통령은 8개월 만에 하야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기도 했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도 재임 중 아들 등 가족들의 비리 사건으로 조기 레임덕 현상을 겪고 남북정상회담 등 재임 중의 일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반복되자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를 골간으로 한, 한국의 정치 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한국 정치의 비극이 중단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과 '마이니치 신문' 등 외신들도 "대통령에 큰 권력이 집중되고 가족들도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이권을 좇는 세력과의 유착을 낳기 쉽다"며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한국 정치 문화의 소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렴결백을 표방한 좌파 정권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된 우리의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게 된다. 헌법상으로 우리나라는 행정과 입법·사법의 3권 분립체제를 갖고 있다. 그러나 권력은 대통령 1인에게 집중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총재를 겸하고 있지 않지만 대통령은 여당 출신 국회의장 선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사법부 수장 인사에도 관여한다. 사실상 3권을 통할하는 셈이다.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들에게 인사 등 각종 청탁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우리 대통령제 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기 말에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4년 중임제 개헌안'을 제시했지만 대선을 앞둔 정치권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5년 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했지만 뒤늦게 치유에 나섬에 따라 실패한 것이다.

물론 역대 대통령의 비극이 제도 탓이 아니라 후진적 한국 정치 문화의 탓이 더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렇기 때문에 후진적인 우리 정치 문화 개선과 더불어 구조적으로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정치 제도 개혁의 공론화가 절실해졌다. 4년 중임제 대통령제에서부터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론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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