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계속되는 한국 정치사의 불행

입력 2009-05-25 06:00:00

한국 정치사의 불행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퇴임 대통령이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우리의 정치현실을 생각한다.

조선시대 정당 간의 대립은 종종 상대 당을 역모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해서야 끝이 났다. 여기에는 국익이 아니라 당의 이익이 최우선이었다. 살기가 서린 정당 간의 대립은 종종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정당 간의 극단적인 정쟁, 같은 당내에서도 계파 간의 암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대화나 타협보다는 소위 끝장 대립이 국민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있다. 정치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국익보다는 자기 당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다. 나라가 일본에 망할지라도 저쪽 당이 잘되는 것을 보지를 못했다. 임진왜란 1년 전에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은 당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 다른 보고를 한다. 선조 앞에서 서인 황윤길은 '일본은 반드시 침공할 것이다'고 보고했던 반면 동인 김성일은 태연히 '침공은 없노라'고 공언했다. 나라가 망해도 저쪽 당과는 같은 길을 갈 수 없었던 것이 우리 정치인들이었다.

IMF 외환 위기 때도 그랬다. 나라가 부도가 나도 저쪽 당에게 정보를 줄 수 없었다. 당을 초월해서 환란을 막아야 했는데도 정보를 독식하고 버티다가 결국은 환란을 자초했고, 수많은 민초들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했던 것이 우리 정치인들이었다.

노 전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욕을 하느냐?'고 물으면 많은 경우 뚜렷한 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싫다'거나 '말을 함부로 한다'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못생겼다'고들 하면서 멋쩍게 웃는다.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중심도시를 확정하고 지방혁신도시를 통해 공기업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려 했던 노력을 보지 못한다. 남북관계에 심혈을 기울여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여 큰 틀에서 민족통일을 진전시키려 했던 노력을 보지 못한다. 검찰과 같은 권력 기관들을 대통령이나 집권당의 뜻대로 하지 않고 독립시켜 자율권을 보장해줌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던 노력을 보지 못한다. 재산세와 양도세를 통해 부동산값을 안정시키려고 했던 부동산 정책, 3불 정책을 통해 내신 위주로 공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사교육의 폐해를 억제하려 했던 교육정책을 보지 못한다. 정책은 보지 않고 그저 보수적인 사람들과 개혁적인 사람들이 무조건 서로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도 우리 정치에 돈과 관련된 어두운 그늘이 있는 것 같다. 좋은 뜻의 후원은 정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대가성 여부이지만 그 기준도 사실은 명확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걸어 넣을 수 있다는 자의적 수사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여전하다. 대가성에 대한 수사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검찰은 외압으로부터 철저히 독립되어야 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후원했다가 구속된 한 후원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한 말이 여운을 남긴다.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돈을 준 것이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다.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정치 잘하고 좋은 일 하라는 마음으로 준 것이 왜 잘못인지 모르겠다.' 칼을 쥔 검찰이야 일단 잡아넣으면 그만이겠지만,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무죄로 풀려날 때 그 억울함은 어디서 호소할꼬? 정치 후원금과 대가성 뇌물이 더욱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하겠다. 선진국의 정치 후원금 모금제도 같은 것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깊게 드리워진 혈연과 지연, 그리고 학연을 바탕으로 한 차별은 후진적이다. 같은 집안과 같은 고향, 그리고 같은 학교는 여전히 우리사회의 주요한 연줄을 이루고 있고 연줄이 없는 사람들은 차별을 받고 있다. 그래서 양극화가 생긴다. 대졸자와 그렇지 못한 자, 주류와 비주류, 강남과 비강남과 같은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일치를 저해시키고 약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노 전 대통령도 이런 차별의 피해자였다.

현대그룹의 정몽헌 회장, 톱탤런트 최진실 씨,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저명한 사람들의 자살이 우리 사회에 자살 신드롬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자살에 이를 정도로 본인들이 겪어야 했을 극심한 고통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지만 사회적 영향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생명이 귀하다는 것은 보편적 가치다.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 모든 이들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굳건하게 이겨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다. 노 전 대통령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전광진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목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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