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여담女談] 경상도 남자와 살아가기

입력 2009-05-22 06:00:00

예쁜 아내를 만나면 3년이 행복하고 착한 아내를 만나면 평생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아내를 만나면 삼대가 행복하다고 한다. 잘생긴 남편과 살면 1년이 행복하고 돈 많은 남편은 10년이 행복하고 마음이 따뜻한 남편은 아내를 평생 행복하게 한다고 한다. 부부가 오랫동안 아름답게 살아가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최고라는 이야기다.

사실 경상도 남자들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넉넉하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마음이라는 것이 말과 행동을 통해 상대방에 전달된다는 점이다. 경상도 남자들은 표현에는 젬병이다. 집에만 오면 그들의 입은 더 무거워지고 말은 더 짧아진다. 대개 50이 넘은 남편들은 마치 타고나기라도 하듯 말을 아낀다. 당연히 표현도 서툴다.

아내들은 안다. 세월이 흐를수록 부부 사이에 말만큼 유용하고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경상도 남편들은 입을 열지 않는다. 간혹 던지는 말은 본인의 의도와 달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외출한 아내가 늦게 돌아오면 '와 이제 왔노'라고 툭 내뱉는다. 아내들은 이 말이 '걱정하면서 기다렸다'는 뜻인 줄 알면서도 섭섭하다. '명절만 되면 와 그렇게 예민하노' 라는 이 말에 아내들은 남편이 야속하다. 명절인데 또 고생하겠다는 경상도식 표현인 줄 알면서도 그렇다.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는 마음은 '없는 마음'과 같다. 아무리 고마워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경상도 남자들은 아내가 이심전심으로 알아주기를 원하고 눈만 보면 척 헤아려 주길 기대한다. 그리고는 너무 늦게서야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낸다. 이 경우 다시 할 수 없거나 그 효용성이 한참 떨어진 후가 되기 십상이다.

오늘 이렇게 경상도 남자를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어제가 '부부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이 날을 법정기념일로 정해 의미를 강조하고 있지만 부부에게는 아직도 어색한 날이다. 경상도 남편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날 아내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면 좋으련만 이곳 남편들은 손쓰는 일에도 인색하다. 발은 손보다 더하다. 아내를 위해 부엌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다 못해 천근만근이요, 청소기를 가지러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집에서만은 경상도 남편들의 손과 발과 입은 경쟁력을 잃고 있다.

부부가 되려면 수천 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귀한 인연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다. 지금 당장 아내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문자를 한번 보내보자. 생각보다 쉽다.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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