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헌의 '상해반점' / 방천시장 예술프로젝트 / ~6.30
예술 작품은 식견보다도 감정을 통해 더 많은 부분 소통한다. 개념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지적 구성물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감각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런 작품을 고유의 맥락에서 떼어내 미술관으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관련 현장과 함께 볼 수 있는 점이 장소 특정적인 설치 예술의 매력이다.
방천시장 예술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배종헌의 '상해반점'은 전에 중국집이었던 빈 점포에 들어가 못쓰게 된 광고판을 고쳐 불을 켜고, 한쪽 벽을 뚫어 두 개의 구멍을 내고 그 너머에 각각 모니터를 장치해 구성한 작품이다. 두 편의 싱글 채널 비디오 영상을 통해 그는 벽에 남은 때와 자국들을 살피며 이곳에서 벌어졌을 지난 일들을 상상하고 또 지금은 없는 가상 주방을 재연해 엿보게 했다.
먼저 한 대의 비디오를 보면 처음 이 점포에 들어와 누추한 벽에서 빛바랜 스티커들과 기름 얼룩, 알 수 없는 메모들과 낙서들을 발견한다. 곰곰이 사색에 잠겼다가 그것들을 하나하나 해석해 나간다. 카메라가 벽면 이곳저곳으로 옮겨가며 찾아낸 그 자국들을 생김새에 초점을 맞추면서 상상하는 이야기는 엉뚱하기도 하고 비약적이기도 한데, 온갖 구차한 것들을 탐색하며 삶의 남루한 면들을 들춰내다가 어느새 생각은 이루지 못했던 꿈과 회한과 뒤섞이면서 가닥을 잡아간다. 천정과 벽의 얼룩을 보며 갖가지 고상한 형상들을 유추해내는 화가의 상상력에 대해 말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일화가 떠오르지만 독백으로 읊조리는 이 작가의 내레이션은 진정한 삶에 관해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산문이다. 간혹 화면에 자막처리되는 문장들은 시에 가깝다.
또 한 대의 영상은 시각이 일으키는 상상이 아니라 그곳의 일을 직접 몸으로 체현해 본다. 작가는 배우가 되어 주방장의 일상을 연기하며 과거의 시간으로 들어가는데, 닦고 치우고 야채를 다듬어 썰고, 불을 피워 팬을 달구어 볶고, 밀가루 반죽을 치고 면을 뽑고…. 끝도 없이 연속적인 일들이 도마질 소리와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물소리 등 갖가지 사실적인 음향과 함께 리듬을 타듯 반복되다가 어느 듯 설거지와 쓰레기를 비우는 일 등으로 하루가 마감된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분주하고 긴 노동 과정을 세세한 면까지 재현하는 1인 퍼포먼스를 지켜보다가 문득 광기의 신이자 연극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안내가 그 틈 안의 세상을 지금 이곳과 이어주고 있다고 느꼈다.
미술평론가 ydk814@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한덕수 "24일 오후 9시, 한미 2+2 통상협의…초당적 협의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