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각인된 할머니의 이미지는 동서양이 조금 다르며, 그 차이에 대해서 안타까운 의문을 품고 있다. 서양의 할머니들은 깃털 달린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눈부시게 화려한 성장차림으로 쇼핑을 하거나 산책하는 멋쟁이들이 많은데 우리네 할머니들은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이란 노래 한 소절로 대변된다. 그러면서 나는 서양 할머니들처럼 우아하고 품위 있게 원숙한 모습으로 늙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생겼다. 최근 들어 부쩍 신체 각 부분의 노화를 예민하게 느끼면서 죽음과는 다른 '늙음'에 대한 두려움과 각오, 지켜야 할 수칙 등에 대해 문득 문득 곱씹게 된다.
그럼 노인이란 무엇인가? '늙음'은 단순히 육체적인 연령이나 신체적 노화 정도 등 몇 가지 기준을 정해 놓고 분류하는 단순 작업이 아니라 타인에게 '받는 것'을 요구하게 되는 사람이라는 추상적인 정의를 생각해보았다. 태어나서 성장기까지는 부모나 사회로부터 받기 시작해 성인이 될 때까지 15~20년 계속 받게 된다. 그러다가 그 아이는 어느 새 독립, '주는 쪽'에 서게 된다. 처자를 부양하고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다가 수십 년이 지나면 그는 늙고 다시 자식이나 사회로부터 도움받는 자의 입장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년이란 생물학적인 나이와 관계없이 베푸는 사람이며, 누군가에게 베풀기만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노인이 되는 셈이다.
최근 들어 환갑연의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환갑연이란 무려 60세까지 아무 일 없이 살아온 장구한 삶을 축하 받는 잔치였는데 평균 수명이 늘어난 요즈음에는 지인을 초청, 자신의 장기자랑(?)을 선보이며 식사대접까지 하는 '베푸는 잔치'로 바뀌었다고 한다. '받는 것'으로부터 면제되는, 노인이 되는 시점을 유예시키는 잔치인 셈이다.
얼마 전 한 의과대학 교수가 100세까지 산 장수 노인들을 만난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면서 장수 비결의 몇 가지 공통분모를 지적하였다. 선천적인 요인보다는 생활습관과 환경, 성격, 상황에 대한 대응 방식 등 후천적인 요소가 훨씬 많았다. 인간의 일생이 부질없는 헛수고의 연속으로 볼 때 예기치 않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종종 만난다. 이럴 때 장수 노인들은 내성이 강하며 크게 요동하지 않는 대범함이나 초월함으로 일관, 때로는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소노 아야코라는 일본의 노화 전문가가 설파한 노년에 필요한 네 가지 덕목과도 상통한다. 그 네 가지는 허용'납득'단념'회귀라고 한다.
허용이란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그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탄력적으로 사고하는 것으로, 이미 일어난 것을 탓하기보다 의미를 긍정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범위를 축소, 나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들에 대한 의미를 정성을 다해 찾아 합리화하는 것이 납득이다. 간절히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집착하지 않고 슬그머니 물러나서 오히려 넉넉하고 온화한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단념이다.
회귀란 사후에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접근, 신의 존재나 의지를 인생에 개입시키면 더 쉽게 네 가지 덕목을 인생에 적용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덕목을 날실과 씨실처럼 엮어서 인생이란 옷감을 생산할 때 아름답고 멋스러운 작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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