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빚은 쾌락적 소비가 낳은 개인의 책임인가, 아니면 소비가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하는 현대 소비사회의 제도적 문제인가. 그 대답은 매우 어렵다. '번 만큼 써야 한다'는 전통적 경제윤리로 보면 신용카드 빚은 분명 무절제가 낳은 개인의 악덕이다. 하지만 현대 소비사회가 그러한 소비윤리로부터 탈출을 유혹하고 있다는 점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신용카드의 노예가 된 미국 소비자의 실상을 폭로한 '신용카드 제국'의 저자 로버트 D 매닝 같은 이는 이 같은 관점을 취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소비가 새로운 위상을 획득하면서 신용카드 빚은 비난의 대상에서 비켜나 앉게 됐다. 소비는 대중문화의 홍수 속에서 개인의 존재를 다른 사람과 차별화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그리고 '번 만큼 쓴다'는 전통적 소비윤리는 이미 무너졌다. 이 같은 환경에서 개인이 신용카드로 조달한 돈을 쓰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신용카드 회사의 마케팅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가장 전형적인 예가 단란한 가족이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아버지가 아들과 야구게임을 즐기는 상황에서 신용카드가 등장하는 광고이다. 이 같은 이미지 조작을 통해 카드 사용은 부채가 늘어나는 행위가 아니라 가족의 가치와 신뢰를 확대하는 것으로 교묘하게 포장된다.
그래서 매닝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신용카드) 빚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결코 개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없고, 후기 산업시대의 사회적 불평등과 개인적인 욕망을 최우선시하는 'Just do it' 심리를 적극 활용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 낳은 문제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신용카드 부실이 계속 쌓이면서 금융시장 불안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아멕스나 시티 등 주요 카드회사의 대손상각률(고객이 빚을 갚지 못해 손실 처리된 금액)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10%대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미국 실업률이 당분간 개선될 전망이 없어 카드 부실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점이다. 신용카드 과소비는 월스트리트의 금융공학 사기와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신용카드 개혁이 속도를 내기를 기대한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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