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58·여·대구 동구 지저동)씨는 예순을 바라보는 요즘 책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늦깎이 공부에 매달린 분야는 최신 육아법. 이씨는 넉달 전부터 맞벌이하는 딸 부부 대신 한살 손자를 돌보는 문제로 여러 차례 딸과 언쟁을 벌였다. 나름대로 정성을 쏟고 있는데 '이유식은 이렇게 먹이라' '머리 모양을 예쁘게 하려면 비스듬히 눕히라'는 등 갖은 잔소리를 했기 때문. "내심 섭섭했지만 내 손자를 시대에 맞게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신세대 육아법을 공부하고 있어요. 30년 전과 달라진 게 많긴 하더군요. 기응환도 못 먹이게 해서 이해가 안 됐는데 책을 읽다 보니 딸과 언쟁할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맞벌이 자녀를 대신해 손자 손녀를 키우는 실버 부모들이 신세대 육아법 공부에 나서고 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구해 독학하는가 하면 아예 베이비시터 과정에 등록하는 노인들도 많다. 관계기관의 육아교실이나 다문화가족을 위한 육아교실 등에 끼어들어 배우는 실버들도 적잖다. 2000년 26.7%이던 전국의 맞벌이 가구 비율이 2006년 43.9%에 이를 정도로 맞벌이가 늘고 있어 이런 경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수성구청이 지난달 개설한 베이비시터 전문교육 과정에는 20여명의 실버들이 신세대 주부 100여 명과 함께 육아법을 배우고 있다. 서울에는 할머니를 위한 육아강의가 있지만 대구에는 아직 개설되지 않은 상태. 그렇기 때문에 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딸 같은 주부들과 함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아들 내외 대신 세살 손자와 막 100일이 지난 손녀를 키우고 있는 정두수(57·여·수성구 범물동)씨는 "첫 손자 때는 그저 사랑으로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둘째는 좀 더 체계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베이비시터 과정에 등록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손녀 가르친다고 영어 배우는 친구들을 비웃었는데 내가 손자를 봐주다 보니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출산을 앞둔 이인경(31·대구 중구 남산동)씨는 지난주 친정 어머니에게 육아 관련 책을 사다줬다. 남편과 맞벌이를 해도 한달에 100만원을 웃도는 베이비시터를 두기는 부담스러워 아이를 친정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형편. 하지만 이씨는 "옷가게를 하는 친정 어머니가 종일 가게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아토피가 생길까 걱정"이라며 "생각다 못해 신생아 아토피에 관한 책과 인터넷 자료를 모아 어머니께 보냈다"고 말했다.
대구대 홍덕률 교수(사회학과)는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면서 육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지만 정작 안심하고 맡길 곳은 부모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부모와 자녀 세대 간 육아 방법 차이가 가족 내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가정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교육도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