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내가 중학교 때 우리 반에 몸이 좀 불편한 아이가 있었다. 당시는 병을 앓아도 빨리 처치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좋은 약이 없는 관계로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더 많았다. 어릴 때 열병을 앓았다던 그 아이는 다리를 좀 심하게 절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중년이던 선생님은 늘 밝은 분이셨지만 한 번씩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시곤 했다. 지금 그 얼굴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 표정은 생각난다.
어느 날인가, 우리 반 친구가 아픈 다리를 이끌고 청소를 하고 난 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였다. 그때 그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선생님은 갑자기 그 아이를 끌어안고 우시는 거였다. 가슴이 미어지듯 슬픈 울음이었다.
그때 우리는 잘 몰랐지만 학년이 끝날 즈음 그 울음의 의미를 알게 됐다. 선생님에게 쌍둥이 자매가 있었는데, 그 아이 중 하나가 소아마비로 그 친구와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던 거였다. 당시 우리는 어려서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세 아이의 엄마, 네 명의 손자를 둔 할머니가 되자 지금도 문득문득 그때 그 선생님의 울음이 생각난다. 모자란 자식을 둔 어미로서 그 자식의 앞날이 얼마나 걱정됐을까.
그때 그 선생님도 아픈 아이의 어미였음을…. 그 가슴을 쥐어뜯으며 오열하고 싶은 울음이 우리 앞에서 숨기지 못하고 터져나왔던 것임을 지금은 안다.
그 선생님의 딸이 우리 나이가 됐겠지. 그 눈물을 거름삼아 잘 살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정숙희(대구 수성구 만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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