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행복할까] ③맏며느리
세명의 맏며느리가 모였다. 결혼해서부터 홀로 된 시아버지를 30년 가까이 모셨던 며느리, 10여년 전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 시어머니와 따로 살고 있는 50대 초반의 맏며느리가 자리를 함께했다. 그들은 5시간을 훌쩍 넘기며 맏며느리의 어려움과 보람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다소 격앙된 톤으로 시작된 그들의 사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분해졌다. 그리고는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는 말로 마무리지었다.
맏며느리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딸만큼은 맏이에게 시집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애증과 연민이 교차해요
"남에게 제 흉을 봐서 원망스러웠고, 툭하면 '집 나간다'고 해서 속상했던 기억도 생생한데 하루종일 저만 기다리고 계실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짠해지니 이게 무슨 관계일까요."
10여년 전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안영숙(54·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씨. 그는 오늘도 며느리를 기다리며 병원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계실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동안의 미움도 원망도 가라앉는다고 했다. 당신의 아들보다, 또 딸보다 며느리를 더 의지하고 믿어야 하는 어른의 신세가 애처롭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딸이 옆에 있는데도 기저귀를 사달라고 전화를 하실 때는 '돈드는 일은 왜 꼭 맏며느리를 시킬까' 원망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 안씨의 하소연에 옆에 있던 두 명의 며느리는 "며느리가 참 잘한다는 소리를 병원의 다른 할머니로부터 듣고 싶어서일 것이다"고 거들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기도했다.
시아버지를 30년 가까이 모셨던 신은주(51·대구시 수성구 범물동)씨. 58세에 홀로 된 시아버지는 군인 출신답게 성격이 불같았다. "아침상을 받으면서 점심에는 무엇을 드시고 싶다고 했고, 점심 때가 되면 저녁에는 이것저것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하루종일 밥하다가 세월을 보냈다. 반찬이 입에 맞지 않아 짜증을 내실 때면 차라리 죽고 싶었다"며 지난 세월을 이야기했다.
그는 친정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의 일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경황이 없는 중에 상을 치르고 5일 만에 집에 들어서는데 시아버지께서 대뜸 "왜 이제 오느냐"고 나무랄 때 그 서러움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먼저 위로의 말이라도 있었으면 지금까지 이렇게 섭섭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지나치게 당신의 입장만 내세울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시아버지를 보살피는 일은 오로지 맏며느리의 책임처럼 나몰라라 하는 시댁 식구들이 이때는 정말 원망스러웠다고. 오히려 외동아들이었으면 이런 마음 고생은 덜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효자 남편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는 김미영(52·대구시 북구 산격동)씨. 그는 "전화로 남편과 고추장 이야기, 된장 이야기까지 하는 시어머니가 야속했지만 자식을 키우면서 오죽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으면 그럴까 하는 측은함도 생기게 됐다"고 했다.
◆맏며느리는 타고 난다고요?
힘든 고비 때마다 해결책이 있더라고 세 며느리는 입을 모았다. "저는 며느리만 힘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상담 공부를 하면서 부양받는 어른들도 꽤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에만 있었다면 결코 몰랐을 일들이지요." 결혼 15년 만에 시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는 신씨는 이를 통해 시아버지의 어려움을 헤아리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관계에도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시어른과 함께 있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갖기를 권했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안씨는 " 제 방을 따로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 공간에만 들어가면 어른도 남편도 잊고 나 자신에게 모든 자유를 주었습니다. 음악을 듣고 싶으면 듣고 책을 읽고 싶으면 읽으면서 제 자신의 중심을 잡아갔다"고 했다. 이것이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마음의 힘이 되었다고 밝힌다.
또 아들을 군에 보내면서 부모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기 시작했다는 김씨는 "아들을 군에 보내고 난 후 아들하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고 아들에 대한 시어머니의 그리움을 알게 됐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은 바로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다. 이들은 "남편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 없이는 정말 견뎌내기 힘든 세월이었을 것"이라면서, 남편의 "정말 잘한다" "당신만한 며느리가 없다"는 칭찬과 격려가 있었기에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친정 부모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신씨는 친정 아버지가 "내 딸 같은 며느리가 없다. 성격이 어려운 시아버지를 극진히 잘 모신다"며 자랑스러워 하시는 모습을 보고 두 분에게 실망시켜 드리는 딸이 되고 싶지 않아 더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이런 게 보람이라면 보람이죠
올해 초 시아버지를 여읜 신씨는 "시아버님의 마지막 눈빛을 잊지 못한다"며 눈물을 훔쳤다. "고마움과 칭찬이 함께한 그 눈길에 지난 30년의 어려움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며 "돌아가신 이후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한 것을 보면 크게 잘못 산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세 며느리들은 한결같이 성숙한 인간이 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내세웠다. 시어른과 부대끼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을 죽이며 기다릴 줄 아는 삶의 지혜를 배운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했다. "맏며느리가 안 됐으면 제 잘난 줄 알며 아직도 철없이 살았을 것"이라는 김씨는 이제는 젊은 날과 달리 맏며느리의 자부심마저 느낀다고 했다.
또한 제사를 지내는 마음도 달라졌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제사가 오롯이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이제는 조상을 모신다는 흐뭇함과 뿌듯함이 함께한다"고 했다. 집안 대소사를 맡아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모든 칭찬과 관심이 맏며느리에게 돌아오는 것도 보람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안씨는 "지난 어버이날 시누이가 저의 친정어머니를 찾아가서 카네이션을 주었다"고 자랑하면서 "이런 보람으로 맏며느리하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시댁 식구로부터 인정받는 즐거움이 꽤나 큰 듯했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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