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다발성경화증 앓는 김송희씨
저는 이제 또 한 번의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해야 합니다. 엄마가 이혼으로 집을 떠난 뒤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을 때가 첫 번째 홀로서기였고, 아빠의 폭력을 피해 동생과 단둘이 집을 나올 때가 두 번째, 그리고 이제는 장애를 가진 나를 엄마처럼 돌봐주던 동생을 떠나보내고 진정한 홀로서기를 할 차례입니다.
동생 강희(가명·26·여)는 다음달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꼼짝달싹 못 하는 언니를 감당하느라 제대로 된 일자리는커녕 새벽까지 식당일만 해 왔던 착한 동생이 드디어 행복한 삶을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번 돈은 언니의 병원비로 고스란히 써버리고 웨딩촬영이나 신혼여행을 갈 돈조차 없어 단출하게 식만 올리기로 했답니다. 동생에게 늘 짐만 되는 못난 언니로 사는 현실이 요즘처럼 괴로웠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조차 죄스러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럽습니다. 괜스레 시댁 식구들에게 눈총이나 받지 않을지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15살 무렵부터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타는 듯한 통증에 다리를 절뚝거려야 했죠. 병원에서 내놓은 진단은 '다발성경화증'. 면역체계 이상으로 신경세포의 보호막인 신경수초가 손상돼 발생하는 자가면역성 중추신경계 질환으로 운동-언어-감각-시력-배변 등에 다양한 이상증세가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이름조차 생소한 희귀병이었습니다. 엄마가 이혼하고 집을 나간 뒤 딱 2년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처음에는 증세가 심하지 않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통증이 찾아오면 괴로움에 몸을 비틀며 식은땀을 흘렸고 다리를 절긴 했지만, 생활하는데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갑작스레 증세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 7, 8년 전쯤입니다. 하반신 마비가 와 걸을 수도 없게 됐고, 가끔 경추에도 마비가 오면서 꼼짝달싹도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했습니다. 몇 차례 아팠던 눈은 이제 거의 멀어버렸습니다. 왼쪽 눈만 희미하게 겨우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죠.
그래서 저는 혼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밥을 먹을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없습니다. 겨우 바닥을 기어다니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마저도 팔에 마비가 시작되면서 힘이 들어 1m도 채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증세가 더욱 심해져 병원 신세를 져야 할 형편이지만 병원비가 부담스러워 결국 퇴원하고 말았습니다. 몇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마비로 다리는 벌써 비틀어져 버렸고, 경추까지 마비돼 지금은 장기기능조차 성하지 않은 상태여서 의사선생님이 극구 퇴원을 말렸지만 하는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비로 생긴 빚만 천만원을 넘어서는 처지에 병원에 누워 있는 일이 가시방석만 같아 치료를 받으면서도 맘이 편칠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조금이나마 걸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한 번에 수백만원이 드는 항암치료로 겨우 버티고 있는 가운데 재활치료는 엄두를 낼 형편도 아닙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결국 집에서 '탈출'을 감행하고 말았습니다. 숟가락 하나 챙기지 못하고 여동생과 둘이 맨몸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아픈 것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술만 마시면 시작되는 아빠의 행패는 더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결국 집안 사정을 잘 아는 복지관 선생님이 저희 자매를 위해 집 구할 돈은 물론 살림살이까지 마련해줘 지금의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동생이 떠나면 저 혼자 생활해 나가야 합니다. 인근에 살면서 언제든지 뛰어오겠노라 약속은 했지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죠. 저는 과연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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