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교의 일본어 源流 산책] 우라미(怨み)

입력 2009-05-13 06:00:00

일본인들이 살면서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딱 하나 들라고 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라미'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번역하면 '원'(怨)이란 말로 '원한, 앙심, 원망' 등이 복합적으로 깔려져 있는 복수심을 내포한 강하고 두려운 말이다. 그냥 원망만을 하는 것이 아니고 '억울한 원한을 가슴에 간직하고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앙갚음하겠다'는 비수처럼 무서운 의미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의 어원이 한국말에서 왔다는 것을 알면, 아마 우리는 깜짝 놀랄 것이다. 그렇다. 사실 '우라미'는 한국어의 '울음'이 변해서 된 말이다. 고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들은 거의 전부가 원한 맺힌 서러움을 가슴에 품고 떠난 사람들이다. 처절한 싸움에 져서 또는 어쩔 수 없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처자식과 부모 친족들을 남기고 거친 파도를 헤치면서 서러운 고국을 등지고 떠나던 이들의 쓰라린 가슴과 불타는 증오는 복수심으로 변해 바위처럼 굳어져 가면서, 간신히 목숨 하나만으로 일본에 당도해, 산산이 부서진 행복했던 꿈의 날들을 비통해 하며 이국의 하늘 아래서 울던 울음이 암처럼 굳어져 된 이 '우라미'(怨み).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 일본!' 마치 한국과 일본의 무슨 대명사처럼 쓰이는 이 말은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아마 그런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가까우면 가까웠지 먼 것은 또 무엇인가? 피도 같고 종족도 같고, 말도 비슷하고 어순도 같으며, 애를 낳으면 시퍼렇게 멍드는 엉덩이의 몽골반점까지 같은데, 어째서 그렇게 싫어하고 서로를 용서하려 들지를 않는 걸까?

일본인들 하나하나를 보면 모두가 상냥하고 친절하고 그렇게 예의 바른데, 어째서 집단만 되면 남을 무시하고 깔보며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고 상대방의 아픈 마음을 전혀 헤아리려 하지 않는가? 여기에는 필경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같은 동족이면서도 천 수 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렇게 깊이 미워하고 갈등하는 것은, 이 '우라미'라는 말 속에 흐르는 뿌리깊은 '증오의 DNA'때문일 게다.

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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