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제자 宰予(재여)는 실리에 밝았던 모양이다. 喪(상)을 일년으로 끝내자고 제안했던 게 상징적 사례다. 저절로 음식이 쓰고 몸이 편치 않게 돼 자연스레 3년간 상을 입게 되는 것이라고 했던 스승과 전혀 달랐다. 때문에 재여는 뛰어난 언변과 재능에도 불구하고 공자로부터 어질지 못하다며 꺼려졌다. 제나라 대부를 지내다 온 가족과 함께 해를 입은 것도 才勝薄德(재승박덕) 때문인지 모르겠다.
孔子(공자) 문하에서 가장 나이 많은 축에 속했던 子路(자로)는 선비보다는 괄괄한 장수 타입이었다. 용기 넘치고 화끈했으나 성급해, 비파를 타도 그 소리가 전쟁 치는 듯 왕왕거렸다. 어느 날 스승이 그걸 슬쩍 나무라자 자로는 죄를 지었다며 일주일간이나 식음을 전폐했으니, 그 순박하고 우직한 모습이 너무도 인간적이다. 하지만 재여도 그랬듯 그는, 공자의 제자라고 모두 행동이 조신한 사람들만은 아님을 알리는 예도 될 듯하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는 역시 君子(군자)다워야 제격인 법이다. 예를 들어 스승과 15세 차이 났던 子騫(자건)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컸다. 어느 추운 겨울날 수레를 몰던 그가 말고삐를 놓치는 게 이상해 아버지가 살핀 결과 아들이 홑옷을 입고 있었다. 반면 집에 돌아가서 보니 그 이복동생 둘은 솜옷을 입고 있었다. 이에 아버지가 후처를 내쫓으려 하자 자건이 아버지를 말렸다. "어머니가 계시면 한 아들만 홑옷을 입으면 되지만 어머니가 나가시면 세 아들이 홑옷을 입어야 합니다." 모르긴 해도 그 아버지조차 감동에 가슴 들썩이지 않고는 못 배겼지 않을까 싶다.
공자가 여러 나라를 순회하다 위난에 빠진 와중에 顔回(안회)가 한동안 실종돼 간 곳을 몰랐다. 모두들 애태우는데 한참 만에 그 제자가 무사히 돌아오자 스승은 위엄이고 뭐고 다 집어던졌다. "나는 네가 꼭 죽은 줄만 알았다"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자 제자가 답했다. "선생님께서 살아 계신데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
스승보다 30세나 적어 그보다 선배 되는 제자들이 여럿인데도 공자가 일찌감치 그를 학문의 후계자로 내정했던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등이 함께 든 가정의 달 5월, 이런 시기일수록 더욱 생각나는 캐릭터들이 바로 자건과 안회 같은 분들이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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