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대구시립미술관에 '아트 아카이브' 먼저 설치를

입력 2009-05-07 06:00:00

일상의 일이지만 전시기획에 종사하다 보면 가장 힘든 일이 작가와 관련된 자료수집이다. 전시 규모에 따라 보통 짧게는 수 개월, 길게는 일 년 전부터 각종 자료 수집에 들어가지만 제대로 보존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작품 외에 작가 노트나 드로잉 등 작가와 관련된 기록물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미 작고한 작가의 경우 대개 유족들에 의해 각종 자료가 보존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유품으로 남긴 고인의 방대한 자료를 개인적 차원에서 소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예컨대 현재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고 있는 목랑(木朗) 최근배(崔根培'1910~1978)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 회고전이 그렇다. 목랑은 일제 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다. 그러나 동시대에 천재 화가로 알려진 이인성(李仁星'1912~1950)의 유작이 드문 것과는 달리 목랑의 유작과 각종 자료는 유족들에 의해 오랜 세월 동안 비교적 잘 보존돼 왔다. 특히 그의 조선미전 21회(1942년) 출품작인 '농악'(農樂)과 '암향'(暗香)이 아직도 온존하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연전(年前) 뜻밖의 화재로 목랑의 유족이 소장해온 모든 작품과 자료가 자칫 잿더미로 변할 뻔했으나 다행히도 화마에서 벗어나 세간에 잊혀진 목랑을 재조명할 수 있게 됐다. 1930년대의 유화 작품을 통해 목랑의 초기 서양화 화풍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각종 화구며 창작의 밑그림인 드로잉은 물론 목랑의 개인전 때 남겨진 방명록과 일기장, 메모지 등 귀중한 기록물이 고스란히 전해져 목랑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드로잉 작품의 경우 오랜 세월 습기를 머금은 탓인지 대부분 색이 바랬고 만지면 바스러질 정도로 훼손이 심해 과학적으로 보존처리해야 할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였다.

유족의 능력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공인된 미술관에서 전문가들의 손에 의해 한 점, 한 점 습기를 제거한 뒤 중성지나 한지에 싸서 항온항습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에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에도 시립미술관이 신축 중이다. 내년에 문을 열 시립미술관은 귀중한 역사적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보존할 '아트 아카이브'(Art Archives)를 우선 갖춰 내실 있는 미술관이 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모든 작가들의 작품과 자료를 보다 과학적으로 영구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건립될 대구시립미술관에 그 희망을 걸어본다.

이미애(수성아트피아 전시기획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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