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WHO와 이종욱

입력 2009-05-04 10:55:09

2003년 초 노무현 당선자는 세계보건기구(WHO) 제6대 사무총장에 당선된 후 일시 귀국한 이종욱 박사의 예방을 받았다. 환담을 나누다 노 당선자가 "근데 WHO가 뭐 하는 뎁니까?"라고 물었다. 한국인이 사상 최초로 수장이 된 국제기구라는 점에서 당시 WHO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정작 WHO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몇 해 전 동남아를 공포로 몰아넣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과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전염병의 확산이 WHO의 존재와 역할을 인식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됐다. 최근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신종플루의 발생 또한 WHO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적어도 질병과의 싸움을 진두지휘하는 최고전략사령부로 믿고 있는 것이다.

제네바 WHO본부에는 국제적 차원의 질병이 발생했을 때 통제'치료 등 대응책을 내놓는 비상상황실이 있다. 최근 확산 일로에 있는 신종플루 감염 피해 상황을 시시각각 보고받고 대응 전략을 세우는 곳이다. 고 이종욱의 이름을 딴 'J W LEE센터'다. 그가 어떤 공적을 남겼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질병의 확산 범위에 따라 발령하는 '대유행병(Pandemic) 6단계 경보 체제'가 제정된 것도 그가 사무총장으로 재직할 때였다.

인간과 질병의 싸움은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특히 천연두와 페스트, 결핵, 에이즈 등은 인류의 생존에 중대한 위협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질병과 변종 전염병들이 끊임없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들 질병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 인간의 대응은 힘겹기만 하다. 미지의 적에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겨우겨우 위기를 모면하는 항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질병과의 싸움을 일생일대의 과제로 삼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된다. 고 이종욱 사무총장도 그런 인물 중 하나였고, WHO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2006년 5월 이종욱은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다 먼저 쓰러졌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강조했다고 한다. "적어도 실패는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큰 결과를 남기는 법이지. 바로 그 점이 중요해"라고. 22일은 고 이종욱 박사의 3주기가 되는 날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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