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죽삐죽 못생긴 돌 앞에 안내문이 붙어있다. '1억2천만년전 중생대 백악기 초식 동물 화석.' "이거 파는 거냐?"는 질문에 "5천원"이라고 대답했다. 둘러보니 온갖 물건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낡은 콘센트와 진공청소기 등 각종 전기제품부터 자명종, 은화, 도시락, 녹슨 가위, 불상, 도자기,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까지 만물상이 따로 없다.
1일 오후 '대구사랑나눔장터'가 열리는 달서구 두류공원 내 대구문화예술회관 앞 도로.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가 주최하고 대구YWCA가 주관하는 이 나눔장터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난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11년 동안 218차례 열렸고, 436만명의 시민이 이용했을 정도로 성황이다. 300여개의 온갖 매장이 들어서고, 하루 동안 찾는 시민들만 수만명에 이른다.
문화예술회관 쪽으로 들어서자 200여m의 도로를 따라 빼곡히 자리를 잡은 상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자 펼친 돗자리 위에는 바지, 티셔츠, 양말, 체육복 등 각종 의류가 산처럼 쌓였다. 헌 구두와 헌 가방 수십개가 돗자리 위에 나란히 늘어서 있고, 길 중간에는 낡은 자전거 '3만2천원'과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거리는 물건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든 채 오가는 사람들과 가격을 흥정하거나 구경하는 시민들로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할 정도로 북적였다. 종합운영본부 옆 무료 의류수선봉사단은 재봉틀 5대가 쉴새없이 돌아가며 옷들을 수선했다. 이곳에서 하루에 수선하는 옷만 200~300벌에 이른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싸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이곳 나눔장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올 들어 장터를 찾는 이가 크게 늘면서 새벽마다 자리를 잡으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품목도 의류에서 온갖 중고 물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하루 2만명 수준이던 방문객 수는 올 들어 2만5천~3만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장난감과 도자기 등 중고물건을 팔고 있는 유상태(77)씨는 "경제가 어렵다 보니 비싼 돈을 들여 새 물건을 사는 대신 저렴한 가격에 중고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많이 팔 때는 15만~20만원어치까지도 파는데 요즘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 고물상을 매일 돌아다니며 수집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이곳에서 물건을 파는 서모씨(29)는 "시계나 액세서리 등 젊은이들을 위한 아이템도 1만원 이하로 팔다 보니 찾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시민들의 호응도 좋은 편이다. 이날 양말 5켤레를 샀다는 박선규(46)씨는 "굳이 비싼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물건도 다양하다"고 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면서 나눔 장터의 취지가 흐려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직업적인 상인들이 가세하면서 아낀 물건을 싸게 나눈다는 '아나바다' 운동이 퇴색됐다는 것. 액세서리를 파는 사공선영(24·여)씨는 "번호표를 받기 위해 새벽에 나와도 업자들끼리 새치기가 심해 들어오기 힘들고, 대량으로 물건을 파는 이들도 많아졌다"며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갖고 와서 나누는 개념이 변질돼 아쉽다"라고 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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