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의 빈곤이라 했던가. 여기저기 산천이 손짓하건만 김창섭(43'대구 남구 봉덕동)씨는 막상 주말이면 어디로 핸들을 잡아야 할지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귀찮고 기름값이 아까워 집에 있으려고 애써보지만 아이들 등쌀이 장난이 아니다. 가깝다는 이유로 만만한 팔공산이나 두류공원'앞산공원 등에나 가보려 하지만 아이들 표정은 영 탐탁잖다. 고민하다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온양의 옹기마을과 자수정동굴 나라를 찾았다.
울산 울주군 온양읍에 자리한 외고산 옹기마을은 입구부터 특이하다. 대형 옹기를 형상화한 푯말이 멀리서도 눈길을 끈다. '전국 최대의 옹기 집산지'란 명성답게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각양각색의 옹기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3군데의 전시장엔 주위에서 흔히 보는 장독부터 자그마한 옹기, 문양이 새겨진 장식용 옹기까지 세상의 옹기들은 다 모여있는 것 같다. 판매 가격은 장독(20ℓ)이 4만8천원, 장식용 옹기(20ℓ) 8만원 정도다.
전시장 뒤편에 위치한 한 공장을 찾았다. 공장이라고 하지만 직원 10명도 안 되는 소규모 형태. 아버지의 뒤를 이어 23년째 '옹기사랑'을 하고 있는 영남요업 최영호(43) 공장장은 "마을엔 4곳의 옹기공장이 있는데 그나마 우리 공장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옹기 생산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점토와 사토를 6대 4의 비율로 배합한 흙을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원통 형태의 '흙뭉치'로 만든다. 과거엔 경주 안강이나 영천 등에서 재료를 많이 들여왔는데 지금은 고령에서 주로 가져온다고 했다. 흙뭉치를 미리 준비된 석고 틀에서 도기로 만들어낸다. 도기를 1차 건조한 후 유약을 발라주고 건조장에서 2차 건조를 시킨다. 그렇게 1주일 정도 건조 과정을 거쳐 1천200℃ 가량의 기름 가마에 구워주면 우리가 흔히 보는 진한 고동색의 옹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최 공장장은 "마을 여기저기에 전통 가마가 과거의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현대식 기름 가마로 옹기를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최 공장장은 "보통 많이 나가는 중간 크기의 옹기들은 기계 작업을 하지만 매우 크거나 작은 옹기, 또는 장식용 옹기들은 여전히 수작업을 하고 있다"며 "마을의 공장 직원 대부분이 대를 이은 사람들"이라고 귀띔했다.
이 마을은 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평범한 산이었다. 그러다 1957년 옹기장인인 허덕만씨가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햇볕이 잘 들고 옹기의 재료인 백토와 마사토 등이 풍부한 사실을 알고 옹기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근 부산에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피란민들이 몰려들었고 옹기 수요도 폭발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전국의 옹기장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1960, 70년대엔 200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 만큼 번성했다. 그러다 고무 대야가 나오면서 옹기 수요가 급격히 줄어 지금은 60가구 정도가 옹기 생산에 종사한단다.
하지만 옹기가 우리 전통문화의 한 코드로 인식되면서 이 마을도 전국적인 명물이 됐다. 특히 매년 10월경에 이 마을에서 '세계옹기문화엑스포'가 열리면서 전국구로 발돋움한 것. 마을 곳곳엔 올해 엑스포를 앞두고 역사관이나 마을회관 등 건립 공사가 진행 중이라 시끌벅적했다.
이 마을을 찾았다면 '옹기아카데미관'을 놓쳐선 안 된다. 6월쯤 완공 예정인 이곳은 옹기역사관'체험실 등이 자리하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꼭 들러봐야 할 필수 코스다. 옹기 체험을 예약하면 옹기공장을 운영하는 신재락(35)씨가 직접 시연을 보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옹기 만드는 것을 도와준다. 1개월 뒤엔 자신의 작품을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비용은 개인 6천원, 단체 5천원이다. 052)238-9889, http://onggi.invil.org
전통가마 고집하는 가야신라토기요 장성우 대표
가야신라토기요 장성우(60) 대표는 아버지 뒤를 이어 44년째 마을을 지키며 옹기에 혼을 담고 있다. 아직 전통가마를 고집하는 그는 "가마에서 옹기를 굽는 과정이 가장 행복하면서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도기들을 가마에 넣고 2, 3일 구울 때의 기대감이 옹기 제작의 가장 큰 매력이죠. 하지만 그만큼 실패 확률도 높아요. 과거엔 절반 이상 실패했는데 지금은 좀 나아져 실패 확률이 20~30% 정도예요."
장 대표는 2개월 정도 정성을 다 쏟아 만든 도기들이 가마에서 좋은 옹기로 탄생했을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반면 실패했을 땐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을 정도로 힘이 빠지고 우울해져 다음에 가마 구울 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장 대표는 "계절과 바깥 기온에 상관없이 온도를 똑같이 맞춰야 하는 전통가마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옹기 문화를 살리기 위해선 생산을 줄이더라도 전통가마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30년 전만 해도 옹기가 잘 팔렸지만 한때 옹기에서 납성분이 나온다고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옹기를 접고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죠. 하지만 옹기가 발효와 정화 효과가 탁월한 전통 그릇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지금은 꾸준히 팔리고 있어요."
이 마을 8명의 무형문화재 기능장 가운데 한 사람인 장 대표는 아들에게도 이 업을 물려줄 생각이다. "요즘 평생 직장이 잘 없잖아요. 하지만 옹기 제작은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으니까요. 직장 생활을 하는 아들도 틈틈이 이곳을 찾아 옹기 제작을 배우고 있어요."
가는길 : 경부고속도로→언양분기점→울산IC→울산고속도로→신복로터리에서 우회전→7번국도에서 부산 방면 14번국도로 좌회전→외고산 옹기마을→(되돌아감)→언양분기점→서울산IC→양산 방면 35번국도→작천정 입구로 우회전→자수정동굴나라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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