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재의 여담女淡] 동네가 조용하다!

입력 2009-04-24 06:00:00

요즈음 대구 수성구에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점심 때면 차들로 빽빽하던 대형 식당 앞이 갑자기 조용해지고 백화점 슈퍼마켓 계산대의 긴 줄이 깡충해졌다. 여성의류 매장도, 동네 미장원도, 심지어 동네 은행도 한산하다. 목욕탕조차 손님이 뜸하다. 마법을 부린 듯하다.

온 동네를 순식간에 바꿔버린 주범은 '시험'이다. 아이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엄마들은 모든 모임을 미루고 쇼핑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아이들 뒷바라지에 올인한다. 두문불출이요 연락불통이다. 서울 강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사실 엄마 입장에서 보면 자녀 교육은 지상 최대 과제다. 물론 이의를 제기하는 엄마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대학 보내는 그날까지 편한 날이 거의 없다. 그러니 시험기간 동안은 오죽하랴. 못하면 못하는 대로 가슴 졸이고 잘하면 뒤질세라 마음 졸인다. 이렇게 몇번 천당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면 '늙어도 좋으니 제발 빨리 이 시기를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굴뚝같다.

그런데 문제는 자식에게 시간과 애정을 쏟으면 쏟을수록 보상 심리도 강해진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한 만큼 자식도 노력해 주길 바라고 또 성적으로 보답해 주길 원한다. 하지만 자식들은 엄마의 관심이 부담스럽고 때로는 싫다. 심지어 '엄마의 일까지 포기하면서 내가 언제 관심 가져 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며 따기기도 한다.

행복한 부모는 될 수 없을까. 그러려면 자식을 위한 수고가 '오로지 자녀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부터 접어야 한다. 자녀를 위해 공을 들이고 애태우는 것도 나의 재미요, 내 인생의 한 과정이라는 생각을 가져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수고의 결과가 좋으면 금상첨화요, 결과가 좋지 않아도 젊은날 열심히 살아온 인생의 한 페이지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자녀와 '지금'을 마음껏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하루하루를 자식에게 닦달하고 으르렁대며 보내는 부모를 위해 시간은 마냥 기다려 주지 않는다. 후회는 늘 늦게 오는 법. 대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왜 그때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갖지 않았는지, 왜 그 시절 아이와 추억을 더 만들지 못했는지 후회한다. 뒤돌아보면 자녀 교육 때문에 끙끙대는 그 시간이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아주 제한돼 있다.

마지막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에 이유를 달지 말아야 행복하다. 오늘은 이래서 안 되고 내일은 저래서 자식을 사랑하질 못하는 부모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 왜냐면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한 청춘이 다시 오지 않듯 지금 자녀와 보내는 이 순간도 영원히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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