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진짜 예술가

입력 2009-04-22 06:00:00

넘치는 열정.긍정적 사고로 우리 인생의 명장면 연출을

봄이다. 노란 개나리, 빨간 진달래, 하얀 벚꽃과 연두색으로 변해가는 산과 거리를 보면서 저절로 에너지가 생긴다. 좀 더 욕심을 부려 여기에 베토벤의 전원교향곡까지 어우러진다면 에너지가 넘치는 삶과 아름다운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가 될 것이다.

나는 평소에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고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은 빼놓지 않고 찾아가는 자칭 클래식 애호가다. 내가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 한 사건(?) 때문이었다. 까마득한 신입사원 시절, 한 상사와 함께 독일 출장을 갔을 때 함께 레코드가게를 찾은 상사는 어느 지휘자가 어느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한 곡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달라 보였다. 회계부서에서 하루 종일 숫자와 씨름하던 상사에게 저런 예술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숨어있었다는 것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부러웠다. 국내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갖고 있던 돈을 몽땅 털어서 오디오시스템을 구입했고 베토벤,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수년이 지나 뉴욕 주재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때 세계 최고의 음악을 만나게 됐다. 링컨센터와 카네기홀에서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는 물론 발레공연까지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당시 나를 감동시킨 것은 비단 아름다운 음악만은 아니었다. 같은 곡이라도 자신의 영혼을 담아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내는 지휘자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갖게 된 것이다. 지휘자는 자신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단원들과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하고, 그들을 잘 살게 해 주어야 하며,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높여야 할 뿐만 아니라, 리스크 관리까지 해야 하는 CEO와 같은 존재였다. 경영은 단지 큰 회사 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케스트라에도, 자그마한 가게, 병원, 학교, 그리고 국가에도 경영은 있다.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다해 고객 감동을 만들어내고 구성원들이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모두가 Win-Win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경영이 아닌가?

얼마 전 한 연주회에서 기존에 잘 듣지 않았던 새로운 곡을 만났다. 악장과 악장, 그리고 한 악장 안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선율이 어우러진 '말러 교향곡 1번'이 그것인데 분명히 전에도 들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인생을 조금 더 경험한 지금에 와서 이 음악이 갖고 있는 위대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의 교향곡 안에는 모든 인생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말러의 말처럼 변화무쌍한 말러의 교향곡은 우리의 삶이 짜여진 틀 속에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지도 않은 상황이 계속됨을 설명해 준다. 지금 우리의 인생은 말러 교향곡 1번 중에서 어디쯤에 있을까?

아무 문제없이 평탄하게 살아가다가 폭풍이 불어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다시 찾아온 고요한 인생을 즐기다가 놀라는 일이 갑자기 생기기도 하고, 그리고 웃음은 있지만 지루한 삶이 계속되기도 하고, 에너지가 넘치면서 희망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행복과 환희의 순간이 오기도 하고…. 문득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처럼 드라마틱한 교향곡이 어디에 또 있을까?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다시 일어났고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장애물을 뚫고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다. 굶주림, 전쟁, 잘 살아보자는 외침, 전방위간의 갈등을 갖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에 이어 드디어 단군 이래 주변국보다 잘 살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경제, 교육, 기술 강국,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다.

이런 감동적인 교향곡을 만들어온 우리는 모두가 예술가이다. 지휘자, 연주자, 조명기사, 시나리오작가, 티켓판매원, 청소원, 어떤 역할을 담당하였든 우리는 모두 불멸의 교향곡의 주인공이다. 지난해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위기'라는 단어가 좀처럼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직 연주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예술가의 열정으로 우리 가정,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나라를 경영해 나가자. 예술가가 누구인가? 인생의 장면 장면을 연출하고 연기하는 우리 모두가 바로 진짜 예술가가 아닐까?

도성환(홈플러스테스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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