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의 음악실에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 in C Major, Op. 14a)을 감상했다. 호흡이 긴 교향곡의 전곡을 듣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라 참 오랜만에 50여분 동안 음악에 심취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선율을 지나, 끝부분으로 넘어서면서 귀에 익숙한 음이 들렸다. 아니! 이게 뭐지? 불안하고, 음산한 이 기운은? 피부의 살갗이 돋으면서 냉기가 목덜미를 스쳤다. 한 남자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음악에 오버랩되었다. 집착과 소유욕으로 뒤틀린 한 남자다.
조셉 루빈 감독 '적과의 동침'(1991년). 독한 남편 만나 마음 고생을 하던 줄리아 로버츠가 남편과 처절한 사투극을 벌이는 스릴러였다. 그렇지! 이 영화에서 '환상 교향곡'이 나왔지.
'적과의 동침'은 집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 영화였다. 사랑에는 소유욕이 다소간 스며든다. 나만의 그대, 사랑을 더욱 맛깔스럽게 하는 애착이란 양념이다. 그런데 이 양념이 지나치게 매워 못 먹을 정도가 되면 집착이다.
'적과의 동침'의 남편 마틴(패트릭 버긴)이 그렇다. 그는 집안의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돈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물건뿐 아니라 아내조차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야 안도감을 느끼는 병적인 인물이다. 그렇다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름답기에, 사랑하기에 그녀가 자신의 곁을 떠나거나 혹 바람을 피울까 노심초사, 전전긍긍한다. 심지어 구타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결벽증과 의처증의 화신이다.
이 영화에 그 많은 교향곡 중 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쓰였을까. 그것은 베를리오즈와 남편 마틴이 비슷한 증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뒤틀린 사랑의 조곡(弔曲)을 연주한 2인이다.
'환상 교향곡'은 베를리오즈가 27세인 1830년에 초연된 작품이다. 3년 전인 1827년 베를리오즈는 파리의 한 극장에서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게 된다. 그는 무대 뒤편에서 줄리엣으로 분장하고 있는 한 여배우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당대의 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이다. 베를리오즈가 온갖 사랑의 구애를 해 보지만 그녀는 무명의 청년 음악가에게 냉랭할 뿐이다. 절망에 빠진 그는 사랑의 격정을 음악에 불어넣어 이 곡을 작곡했다.
'어느 예술가의 초상'이란 부제가 붙은 5개의 악장에는 각각 '꿈, 열정', '무도회', '전원의 풍경', '단두대로의 행진', '마녀들의 밤 축제' 등 5개의 표제가 붙어 있다. 병적인 감수성을 지닌 젊은 열혈 음악가가 짝사랑의 절망 때문에 아편을 먹고, 혼수상태에서 단두대를 넘나들며 환각의 세계에 빠진다는 것이 곡의 줄거리이다.
가눌 길 없는 열정과 기쁨, 그리고 뒤이어 밀려드는 불안감과 고통 등 배반당한 사랑에 대한 정서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환상'이라면 흔히 달콤한 밑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이 교향곡의 '환상'은 병적이고 절망적인 것이다. 꿈속에서 연인을 죽이고, 마녀들의 잔치에 참석해 괴이한 외침과 조종(弔鐘), 천둥소리를 들으며 고통스런 환각을 경험한다.
영화에서 이 곡은 마틴이 등장할 때마다 배경 음악으로 깔린다. 로라(줄리아 로버츠)와 잠자리를 가지려고 할 때도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에로틱한 분위기를 방해한다. 마치 불길한 조짐의 서곡과 같다. 가장 압권은 후반부이다.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로라는 이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달콤함인가. 연인과 헤어져 집에 온 로라는 조용히 들려오는 '환상 교향곡'을 듣고 몸이 굳어버린다. 제5악장 '마녀들의 밤 축제' 중 '진노의 날'이다.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늘 듣던 곡이다. 남편 몰래 수영을 배워 익사를 가장하면서까지 남편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욕실에 정리된 수건과 상표가 가지런히 정돈된 선반의 통조림을 보며 남편이 돌아왔음을 직감한다.
마틴은 예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로라를 뒤에서 껴안는다. 그러나 눈빛 너머, 수정체 아래에는 뒤틀린 사랑의 격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한 여인을 결박한 정신이상자의 욕망이다. 총을 든 로라에게 마틴은 다가선다. 설마 그녀가 총을 쏠 수 있을까. 그러나 방아쇠는 당겨지고, 세 발의 총성이 어두운 '환상 교향곡'과 함께 울려 퍼진다.
베를리오즈에게 사랑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병적인 몽상가에 몸을 아끼지 않는 열정과 열망의 소유자였다. 충동적이고 대담한 심성이 이 자전적인 교향곡을 만들게 했다. 그가 스미드슨을 사랑한 것이 환상은 아니었을까. 마틴이 로라를 소유하려고만 했던, 적과의 동침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사랑처럼 말이다.
베를리오즈와 스미드슨은 이 곡이 초연된 지 2년 후 결혼하지만, 끝내 행복하지 못하고 별거하게 되고, 1854년 스미드슨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