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다들 남는 장사 하는데

입력 2009-04-16 10:48:39

북한이 6자회담 파기와 핵 원상복구를 선언하고 다시 빗장을 걸었다. 잠시 머리를 굴 밖으로 내밀고 좌우를 살피던 너구리가 다시 제 굴 속으로 쑥 숨어들어간 모양새다. 2003년 8월 마지못해 6자회담에 나오긴 했지만 과연 언제 그 본색을 드러낼까 궁금하던 터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6자회담은 북한이 시간을 끌기 위한 도구다. 북한은 한 번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적이 없다"며 임시변통설에 무게를 두었다. 명줄이나 다름없는 핵 카드를 북한이 절대 놓을 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북한이 유엔 안보리가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음 막에서 보자며 무대 뒤로 퇴장하고 말았다.

6자회담 개시 이후 5년여간 북한의 '핵 비즈니스'를 중간결산해 보면 알차다. 미국과 밀고 당기면서 핵실험을 하고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도 얻어내고, 탄도미사일 솜씨까지 뽐냈으니 말이다. 여러 차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얻은 수확이다. 5년 7개월이라는 시간을 넉넉히 버텼다. 대망의 2012년 준비작업치곤 이보다 기초를 더 잘 닦을 순 없다. 잘 알다시피 2012년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다 김정일 위원장이 고희를 맞는 해다. 북한 집권세력 입장에서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다. '고난의 행군기'에 실추된 체제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강성대국' 건설을 내걸었고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올해 김정일 3기 체제 출범과 함께 이완된 내부 기강을 다잡고 미국까지 압박하려면 초강수를 두고 까칠하게 놀아야 안팎으로 먹힌다고 계산한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체제 보위에는 군사적 수단만한 것이 없다는 게 그들 판단이다. 먹고살 일이 급하긴 하지만 좀 굶으면 되고 북한 교역의 80%를 차지하는 중국이 뒷배를 봐주니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다. 비록 중국 눈치가 보이긴 해도 올해 북'중 수교 60년을 계기로 상호 관계 강화를 확약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이 무엇을 꺼릴 것인가. 이러니 블룸버그 통신은 "북한 경제규모가 260억 달러 수준인데 워런 버핏 같은 부자가 쉽게 사들일 수 있는 한 나라에 동아시아 전역이 볼모로 잡혀 있다"고 빈정댄다. "미사일 발사에다 6자회담 파기까지 최대의 승자는 김 위원장이고, 최대 피해자는 북한 주민"이라는 평가까지 냈다. 미국 입장에선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지만 북한이 통제가능한 범위 내에 있고, 중국'러시아는 북한의 몽니에 속 끓여도 밑진 장사는 하지 않았다.

납치 문제에 몰입한 나머지 6자회담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일본은 '미사일 쇼'의 최대 수혜자로 부상했다. 바닥권이던 아소 총리 지지율이 오자와 수뢰사건과 미사일 쇼 덕에 30%를 넘어섰다. 지지율도 높이고 군사대국화 명분도 쌓고 일거양득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를 앞두고 일본 정부와 언론은 전 국민의 눈길이 쏠리도록 호들갑을 떨었다. 쇼가 끝나자 이제는 방위력 확장이라는 심지에 불을 댕기고 있다. 방위성은 조기경계위성 확보를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언론은 미국에 최신예 스텔스전투기 F22의 신규 발주 중단 결정을 재고하라며 사설까지 동원해 거들고 있다. F22는 일본이 차기 주력 전투기로 눈독 들이고 있는 기종으로 그 위력은 이미 알려진 바이다.

따져 보면 결국 북한 벼랑 끝 전술의 최대 피해자는 우리가 아닐까. 북한의 치고 빠지기 전략을 지켜본 국민들의 느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10년간 퍼줄 만큼 퍼주고도 눈치코치 살피다 북한의 '핵 놀음'에 끌려다니며 응석 받아주는 신세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본전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신용도 하락 걱정까지 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더 이상의 수세는 용납할 수 없다. 상황을 역전시키거나 호전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새 전략이 필요하다. 굴 속에 다시 들어간 너구리를 불러내려면 적당히 냉각기를 갖고 위기관리를 하면서 정책을 가다듬어야 한다. 6자회담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지만 수표에 사인만 하는 처지라면 낡은 무대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다음 막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결산 성적이 달라진다. 새 막에서 정부가 어떤 연기를 할지 궁금해진다.

徐 琮 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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