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신상정보가 담긴 기록물을 폐지값을 받고 넘겨주는 공공기관 보도(본지 1월 12·13·15일) 이후 파쇄처리 강화 등 개인정보 보호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보존연한이 지난 기록물 처리에 소홀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이 기재된 폐기 문서들이 kg당 50원 정도로 값이 매겨져 고물상으로 마구 넘겨지고 있는 것. 인구 15만명 이상의 기초자치단체는 지난해 말까지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을 두도록 하고 있으나 대구의 7개 구·군(중구 제외)에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문서 고물상에 '산더미'
대구경북의 대부분 구·군청과 읍·면사무소 등은 보존기한이 지난 문서 처리를 전문처리업체에 맡겨 공장으로 옮긴 뒤 용해(물에 녹이는 작업)과정을 직접 지켜보기 때문에 폐문서가 고물상에 쌓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공무원은 "심의회를 거쳐 폐기가 확정된 문서를 한 곳에 모은 뒤 처리업체 차량에 실으면 뒤따라 가 그 자리에서 용해되는 것을 보고 사진을 찍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여전히 개인정보가 담긴 문서가 고물상 이곳저곳에 나뒹굴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공무원들의 개인정보 보호 의식 부재의 심각성이 또 한 번 드러난 것.
지난 10일 오후 본사 취재진이 대구경북지역 고물상들의 폐지들이 최종적으로 수합되는 대구 동구의 한 고물상을 찾았다. 이곳에는 각종 폐문서들이 담긴 1t짜리 자루 30여개에 쌓여 있었다. 자루 밖으로 나온 서류들을 들춰내자 개인정보들이 담긴 문서들이 눈으로 쉽게 확인됐다. 취재진이 자루 3, 4개에서 확인한 것만도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등기촉탁서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민사집행사건 기록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차량운행일지 ▷울진등기소 등기부등본 ▷대구 동구 신서동 주소의 건물전세권 설정 등기신청 서류 ▷대구 달서구 송현동 주소의 대구지방법원 등기촉탁서 등이었다. 이들 서류 중에는 성명이나 주민등록번호가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것도 적잖았다.
폐문서 처리업체들이 실제로 제지업체에 용해를 의뢰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을 보관하는 사실이 확인된 것. 경북의 한 고물상 A씨는 "재질이 좋은 기록물은 일반 폐지보다 값을 훨씬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고물상들이 곧바로 용해하지 않고 따로 분류 작업을 하기도 한다"며 "공무원들이 폐기록물의 용해과정을 직접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폐기 전문가가 없다
공공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시행령 부칙 5조)에 따르면 광역시·도, 시·도교육청은 2007년 12월 31일부터 인구 수가 15만명 이상인 기초자치단체는 2008년 12월 31일까지 기록물 전문요원을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2007년 6월 전문연구사 2명을 채용했지만, 나머지 기관들은 채용계획 중이거나 아직 정원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대구시교육청은 올해 전문연구사 1명의 정원을 확보하고 올해 안에 채용에 나설 계획이고, 경북도청도 하반기에 2명을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경북도교육청 역시 지난해 정원 1명은 확보했으나 예산 등의 문제로 채용은 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까지 전문요원을 배치해야 하는 기초자치단체는 아직 단 한명도 뽑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구시교육청을 비롯한 도청, 도교육청은 2008년 1월부터 보전연한이 다 돼 폐기처리해야 하는 각종 문서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요원 경우 기록학 등 관련분야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로, 기록물 관리 분야만 전문적으로 다루다보니 일반공무원이 담당할 때보다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이라는 장점이 있다. 한 구청 담당공무원은 "지난해 공직사회 구조조정 등으로 인력을 줄이는 판에 신규인력을 뽑기 어려운데다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지 계약직으로 둘 지를 두고 논의만 하고 있다"고 했다.
◆현장 파쇄 분위기도 확산
대구시는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내년부터는 처리비용을 받고 용해하던 폐기문서를 예산이 들더라도 현장 파쇄하는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폐기기록물을 대행업체에서 일괄 수거 처리하던 방법에서 파쇄업체가 직접 문서고 앞까지 와서 그자리에서 파쇄하는 것으로 운반과정에서의 문서유출을 막기 위한 방편이다.
시 관계자는 "문서를 업체에 맡기면 kg당 단가를 업체로부터 받지만 현장 파쇄를 하면 처리비용을 들여야한다"며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법이 강화된 만큼 안전하고 확실하게 처리, 혹시 모를 유출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대학들도 지난해부터 보존연한이 지난 기록물을 파쇄처리하고 있고, 대구축산농협의 상당수 지사들도 폐문서를 현장에서 파쇄하는데 동참하고 있다. 제2작전사령부와 육군 3사관학교 등 군이나 관련기관도 파쇄처리하고 있으며, 최근엔 한국전력공사 영천지점이 전기사용 신청서, 공사준공 정산내역서, 국가기술자격증, 각종 전기시설공사 금액 등이 담긴 폐문서들을 현장에서 파쇄해 개인정보 보호에 나서고 있다.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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