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토인비와 청어

입력 2009-04-13 06:00:00

살아가면서 겪는 극심한 좌절이나 과도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우리 몸의 저항력과 면역력이 떨어지므로 당연한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스트레스가 전무(全無)한, 마냥 휴식만 가진다면 건강에 도움이 될까? 실제로는 최고의 휴식인 수면만 계속 취한다면 누구나 곧 무기력에 빠져버린다. 오히려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목표를 향해 약간의 긴장을 가지고 활동할 때 스스로 몸과 마음이 건강함을 느낀다. 계절 중 혹독한 겨울이 있는 나라 대부분이 현재 선진국의 반열에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가 수술한 환자들을 보면 대부분 주위에서 무조건 '푹 쉬라'고 권한다고 한다. 암 수술을 했으니 주위의 걱정이야 오죽할까. 그런데 그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분들을 보면 오히려 곧 무력증이나 우울증에 빠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퇴원한 환자들에게 심하게 지칠 정도만 아니라면 가급적 수술 전에 하던 생활을 그대로 하라고 권한다.

김연아 선수가 지난달 국제빙상연맹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07점이라는 세계신기록으로 겨우내 움츠렸던 온 국민의 가슴을 활짝 펴게 하였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던 시상식에서 애써 눈물을 참으려던 그녀의 대견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번 대회에서 그녀에게 가장 큰 힘을 불어 넣어준 동력은 바로 우수한 라이벌 선수들이 아니었을까?' '만일 그들과 같은 훌륭한 상대가 없었다면, 그녀 혼자서 200점 이상을 얻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세계적 역사학자인 토인비 박사가 즐겨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북쪽 바다에서 청어 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먼 거리의 런던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 운반할까'였다. 어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배가 런던에 도착하면 청어들은 거의 다 죽어 있었다. 그러나 꼭 한 어부의 청어만은 싱싱하게 산 채로 있는 것이었다. 이상히 여긴 동료 어부들이 그 이유를 물어 보았으나 그 어부는 좀처럼 그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마침내 동료들의 강요에 못 이긴 어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청어를 넣은 통에다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넣습니다." 그러자 동료 어부들이 놀라 물었다.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 않습니까?" 어부는 말했다. "네,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놈은 청어를 두세 마리밖에 못 잡아먹지요. 하지만 그 통 안에 있는 수백 마리의 청어는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쳐 다니지요. 런던에 올 때까지 모든 청어가 살기 위해 열심히 헤엄치고 도망 다닙니다. 그러니 먼 길 후에 런던에 도착해도 청어들은 여전히 살아 싱싱합니다."

메기로부터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청어들을 건강하게 살아있게 한 것이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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