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시사 코멘트] '책 읽는 도시' 만들기

입력 2009-04-11 06:00:00

이달에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 있어서 그런지 언론마다 책 읽기와 관련된 기사들이 눈에 많이 띈다. 김천시가 지난해 작은 도서관 3곳을 개관한 데 이어 올해 4곳을 추가 조성한다는 작은 기사도 그 중 하나다. 푸름찬, 꿈엔들, 달봉산, 김산고을, 고래실, 삼산이수 등 예쁜 도서관 이름 때문에 인상이 깊었는데, 이렇게 예쁜 이름을 짓는 정성이라면 우리의 척박한 독서문화를 개선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우리의 독서문화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우리나라 연간 1인당 독서량은 3권이 채 안 되고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문화부의 200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는 성인 10명 중 2명이 1년 동안 한 권의 책도 보지 않는다고 답했고, 그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인당 한 달 순수도서구입비가 2500원으로 담배나 화장품구입비의 2분의 1,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오죽하면 독서문화를 진흥하기 위한 법까지 만들어야 했을까.

이런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지자체마다 '책 읽는 도시'만들기에 한창이다. 지속적인 도서관 건립으로 독서 인프라가 확충되었고, 도서관 시설도 많이 좋아져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독서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자 하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공도서관, 학교도서관, 사립 도서관, 작은 도서관 등을 네트워크화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공간과 책을 확보해 놓고도 정작 학생들과 연결되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사서교사의 부재, 독서프로그램의 미비 등 여러 원인이 지적되고 있지만, 사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어려서부터 익숙해진 잘못된'책 읽기' 방법에 있다. 주입식 교육에 따른 암기 위주의 '책 읽기'방법이, 예를 들어 동서양 고전이나 인문사회 교양도서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는 것이다. 웬만한 학생들은 이런 도서를 접했을 때 몇 장 넘기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도서관에 관심을 갖고 도서관 자료를 이용하는 습관은 어린 시절에 형성되기가 가장 쉽다.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을 개발해 책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선진 국가들의 사례가 부러울 뿐이다. 그들 국가의 어린 학생들이 이런저런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에 왔을 때 그들 손에 들려 있는 단테의 '신곡'이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괴테의 '파우스트' 등 서양 고전들을 보면서 같은 또래의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책 읽기'에 대한 우리 선인들의 생각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시점에서도 유효한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선인들은 우선 '책 읽기'를 '마음을 삼가는' 操心(조심)의 요령과 같은 맥락으로 봤다. '책 읽기'는 학문을 통해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었고, 단순히 지식과 정보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자기 수양을 위한 방법이었다. '책 읽기'의 목적이나 필요성, 방법 등에 대해 분명한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문헌들을 보면 당대의 그릇된 '책 읽기'풍조에 대해서 비판하는 글들도 많이 볼 수 있다. 18세기 조선 후기의 실학자 李德懋(이덕무)는 精讀(정독)과 玩讀(완독)의 '책 읽기'방법을 강조하면서 당시의 잘못된 방법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서책을 살펴보면, 첫째 권은 반드시 (책장이) 닳아 부서졌는데, 둘째 권부터 끝 권까지는 깨끗하기가 마치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것 같으니, 선비의 뜻이 처음에는 부지런했다가 끝내는 게을러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완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이덕무가 비판한 것은 당시의 게으른 선비들의 풍토였지만, 지금의 학생들이 완독을 못하는 것은 우리 교육제도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 크다. 하루아침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선진 국가의 사례나 우리의 전통적 '책 읽기' 생각을 잘 아울러서 좋은 독서프로그램도 만들고, 지금 구축하고 있는 독서 인프라가 제대로 잘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구한의대 중어중국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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