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대한민국의 불행'

입력 2009-04-10 11:07:46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앞바다에 왜군을 실은 병선 700여 대가 나타났다. 壬辰倭亂(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20만 명에 이르는 일본군의 기세에 조선은 속수무책이었다. 20일 만에 수도인 한양을 내줬고, 두 달도 되지 않아 전 국토가 짓밟혔다.

임진왜란은 한민족의 최대 위기였다. 그 격랑을 헤쳐나가며 나라를 구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西厓(서애) 柳成龍(류성룡)이다. 압록강을 건너려는 선조의 옷자락을 붙잡은 것도 그였고, 전란을 미리 내다보고 이순신'권율을 중용한 것도 그였다. 그래서 서애를 두고 '하늘이 내린 재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통찰력, 인재를 분별하는 식견, 임기응변 등을 서애 리더십의 핵심으로 꼽았다. 서애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가장 큰 힘은 그가 청렴했기 때문이다. 서애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비용조차 없었다. 제자인 우복 정경세가 "어찌 10년 동안이나 재상을 지내고도 제갈량이 남겼다는 뽕나무 800그루도 없단 말인가"라며 시를 지어 청렴을 전할 정도였다. 청렴했기에 서애는 당쟁 속에서도 소신껏 일할 수 있었고, 사분오열된 조정을 아우를 수 있었다.

'박연차 게이트'가 갈수록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과 수족 같은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된 데 이어 전직 국회의장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이 부인이 돈을 받았다며 직접 사과하고 나섰다. 도덕성을 기치로 내걸었던 정권이었기에 국민의 실망은 더욱 크다. 이런 사람들에게 국정을 맡긴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修身(수신) 齊家(제가) 후에 治國(치국)이라 했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구린 돈을 받은 사람은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노 전 대통령 주장처럼 부인과 조카사위가 돈을 받은 사실을 한참 후에 알았다손 치더라도 그는 제가에 실패한 사람이다. 집안은 물론 자신의 행동거지도 올바르게 갈무리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한 나라를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인가.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자신은 물론 주변 인사들까지 청렴해야만 그 말과 행동에 힘이 실리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국민으로 하여금 지도자의 언행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게 노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이다. 그런 이유로 노무현 개인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불행인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