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기억 나지않는다고?…차라리 생각을 접으면 아하!

입력 2009-04-07 06:00:00

지난달 31일 실시된 교과학습진단평가 때의 일이다. 대구 A중학교 1학년 이민수군은 사회시험을 치를 때 문제에 나오는 용어의 뜻이 생각나지 않아 답답했다. 평소 잘 알던 내용인데 이날따라 기억이 머리 속을 맴돌 뿐이다. 민수군은 생각을 접고, 다른 문제부터 풀었다. 그리고 시험시간이 끝나기 직전 갑자기 풀리지 않는 문제의 답이 떠올랐다. 교사들은 시험을 치를 때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부터 풀어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끙끙거리면 시간이 부족해 다른 문제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문제를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풀면 답을 쉽게 찾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길가다 안면이 있는 사람과 만나 인사를 나눴지만, 그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기억의 저편을 헤집고 다닐 때가 있다. 결국 기억을 포기하고 밥을 먹던 중 갑자기 그 사람의 이름이 떠오를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기억 해내려는 것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더 이상 그 생각을 하지 않거나 차라리 다른 생각을 하면 뇌가 안정돼 원하는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연구결과가 있다.

지난해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대 조이딥 바타차랴 박사팀은 "애써 생각할 때와 잠시 생각 활동을 멈출 때 발생하는 뇌파가 각각 다른데, 생각을 멈출 때 나오는 뇌파가 기억을 떠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고 과학연구지 '공공과학도서관 원(PLos ONE)'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성인 21명에게 두뇌게임을 시키고 동시에 전극을 이용해 뇌파를 검사하는 뇌파검사(EEG·Electroencephalography)를 실시했다. 두뇌게임은 3개의 단어를 제시하고 이 단어들에 덧붙여 합성어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단어를 유출해내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예를 들어 소스(sauce), 소나무(pine), 게(crab)를 보고 생각할 수 있는 답은 사과(apple)이다. 사과소스(apple sauce), 파인애플(pine apple), 야생능금(crab apple)처럼 3개 단어 어디에다 사과(apple)를 넣어도 새로운 합성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생각이 나지 않을 때 집중하면 할수록 뇌 두정엽 부분에 감마파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정엽은 정보를 통합하는 역할을 하며 뇌 상부 뒤쪽에 있다. 연구팀은 뇌에 감마파가 늘어날수록 초조해져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

한편 연구팀은 답을 맞추지 못하는 참가자들에게 힌트를 주고 문제를 생각하지 않게 하자, 이들은 두정엽 부분에 알파파가 증가하면서 결국 답을 알아냈다. 감마파는 빠르게 진동하는 형태로 정서적으로 초조한 상태이거나 추리나 판단과 관련이 있다. 알파파는 뇌가 이완하고 있을 때처럼 편안한 상태에서 주로 나타나며 물체를 주시하거나 정신적으로 흥분하게 되면 억제된다.

연구팀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계속 생각하지 말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다"며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아하'하고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험을 치를 때 긴장하지 말고 안정을 취하라'는 조언은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뇌 속에 감마파보다는 알파파가 많이 나오도록 하라는 것이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