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를 아내와 같이 보았다. 긴 제목만큼이나, 한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여정을 담은 영화다. 여든 살 노쇠한 육신으로 태어나 영혼이 말라버린 갓난아기로 죽어가는, 기묘한 운명을 타고난 사내의 파노라마를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라는 한 소설가의 경구에서 착안해 단편소설로 엮어내고, 이를 다시 한 편의 서사극으로 만들었다는 뒷이야기이다. 그렇듯 생로병사의 온갖 희로애락을 담아내고 자못 애절한 사랑 이야기까지 곁들여져 있지만, 결국은 영원한 젊음을 갈망하는 한바탕 꿈 같은 동화인 셈이다. 마치 어릴 적 읽었던 '젊어지는 샘물과 욕심쟁이 영감님'이라는 우스꽝스럽고도 슬픈 이야기처럼 말이다.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가는 세월에 오는 백발이라, 옛 사람들의 한탄처럼 나이 듦은 예나 지금이나 피할 길이 없다. 귀 어두워지고 눈도 점점 침침해진다고 푸념을 하는 친구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일러주었다고 한다. 남의 이야기를 귓전으로 듣고도, 다 알겠노라고 큰소리치던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자. 이제부터라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손바닥으로 귓바퀴를 키워서라도 귀 기울여 보라는 게다. 약빠른 고양이가 앞을 못 본단다. 눈앞의 일에만 급급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던 젊은 날의 근시안, 그에 대한 경계와 보상으로 노안이 찾아온 셈이라고 말이다. 밀려오는 가을바람 막자고 가시 들고 막대 휘두를 일도 없고, 될 일도 아니다. 꽃샘 잎샘 속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린 꽃망울도 가슴 아린 광경이지만, 소슬바람 가운데에서 저 혼자 아등바등 남루한 봄꽃을 부둥켜안고 있는 정경도 안타깝기는 매한가지이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의 '그 꽃' 전문) 어느 꽃이 더 아름답다고 우길 일도, 너희들이 꽃을 제대로 보았느냐고 윽박지를 일도 아니다. 봄 아침을 환하게 밝혀주는 진달래도 반갑고, 가을밤을 은은하게 물들이는 국화도 정겹다. 다만 저 혼자 봄바람 난 국화나 서릿가을이 지나도록 신바람이 난 진달래는 우스꽝스럽다 못해 딱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철없는' 꽃이라고 부른단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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