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시사 코멘트] '다름'과 '차이'

입력 2009-04-04 06:00:00

일상 언어에서 '다름'과 '차이'는 크게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두 가지 물건을 놓고 '크기가 다르다'고 하거나 '크기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에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어떤 때는 사태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하곤 한다. 예를 들어 '人種(인종)이 다르다'고 하는 말과 '인종이 차이가 난다'고 하는 말에는 의미에 차이가 있다. 뉘앙스가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 국어사전에서도 '다름'은 '같지 않음'으로 '차이'는 '서로 차가 있게 다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어떤 정치학자는 이 '다름'과 '차이'라는 개념을 차용해서 우리의 비틀린 정치현실을 조망해 보기도 한다. 그 요지는 현대사회에서의 정치적 행위는 '다름'을 인정하면서 '차이'를 지양하는 이중적 행위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다름'은 여러 조건들을 동일하게 인정했을 때 구분의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그것은 다양성의 인정으로 전환된다. 문제가 되는 사태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들이나 행동을 인정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차이는 다르다고 한다. '차이'는 하나의 사태에 대해 양의 많고 적음, 혹은 위아래의 서열을 구별함으로써 서로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지고 있는 부의 많고 적음,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 등을 통해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은 조건의 차별성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할 수 있음과 없음이 결정된다. '차이'는 행위나 사고 자체에 영향을 주고, 사회 내에서 배제와 억압을 가져오며, 서로를 인정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는 '다름'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차이'를 강조해 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심지어는 폭력사태까지 발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앞으로의 정국에 대해서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쟁점 법안들에 대한 논의도 그렇다. 여전히 평행선만 긋고 있으며, 주어진 시간 내에 의견 접근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그야말로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 역사에는 아름답게 전하는 얘기가 있다. 병자호란 때의 일이다. 청나라 군대가 남한산성을 에워싼 지 23일째, 조선 조정은 마침내 청나라 진영에 화친을 청하는 국서를 보내게 된다. 당시 성 안에선 主和派(주화파)와 斥和派(척화파)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는데, 주화파의 대표는 이조판서 최명길이었고, 척화파의 대표는 예조판서 김상헌이었다. 이들은 모두 뛰어난 학자이면서 유능한 정치가였다.

최명길이 그 국서를 한참 쓰고 있는데 김상헌이 이를 알고 달려와 그 국서를 뺏어 찢어 버렸다. 그러자 최명길은 찢어진 것을 주워 다시 풀로 붙이게 된다. 이로부터 '찢는 사람도 없어서는 안 되고, 줍는 사람도 없어서는 안 된다'(裂之者 不可無 拾之者 不可無)는 말이 생겨나게 된다. 兩是論(양시론)이다. 두 사람의 상반된 견해가 모두 불가피했다는 뜻에서 그런 얘기가 나온 것이다.

강화가 성립된 후 두 사람 모두 청나라에 잡혀가게 된다. 김상헌은 강화를 반대한 죄목이었고, 최명길은 청나라 몰래 명나라와 내통하고 군비 증강을 꾀했다는 죄목이었다. 먼저 심양의 감옥에 있던 김상헌은 나중에 잡혀 온 최명길과 만나게 되는데, 이때 두 사람은 詩(시)로써 서로의 마음을 전하게 된다.

김상헌이 먼저 시를 보냈다. '끓는 물도 얼음도 다 물이고, 갖옷도 베옷도 모두 옷인 것을, 조용히 두 사람 생각 찾아보니, 문득 오랜 의심 풀렸네.'(湯氷俱是水 구葛莫非衣 從尋兩世好 頓釋百年疑) 이에 대해 최명길은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그대 마음 바위 같아 굴리기 어렵고, 내 도는 고리 같아 돌고 돈다네.'(君心似石終難轉 吾道如環信所隨)

끓는 물이나 얼음이 모두 물인 것처럼 강화를 주장한 사람도 척화를 주장한 사람도 다 조국을 위한 것이었지만 방법이 달랐다. 애국이라는 이념은 같을지라도 대책에서는 얼마든지 방법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의 경륜을 후대의 사람들은 두고두고 칭송해 왔다. 이런 모습, 지금 우리 정치에서 볼 수는 없을까.

이 상 호(대구한의대 중어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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