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 '젠틀맨 리그'는 모험가 '알란 쿼터메인'과 그의 동료들이 '1899년'에 벌이는 모험을 다룬다. 이 영화의 주된 콘셉트는 '1899년'으로 상징되는 세기말적 상황에 있다. 그것은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결과로 전 세계가 임박한 세계대전의 공포 속으로 빠져든다는 스토리상의 설정임과 동시에, 20세기 이전에 활약한 여러 판타지 작가들의 피조물들을 결산해 보여준다는 영화(혹은 원작 만화)의 기획 의도를 암시한다.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이 없던 시절의 지구는 과연 누가 지켰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의 첫번째 답은 개구쟁이 '톰 소여'이다. 마크 트웨인이 이 캐릭터를 창조했던 연도를 고려하면 이 영화에서의 톰 소여는 너무 젊은 편이지만, 그런 건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문제다. 두번째 답은 H.G. 웰스의 '투명인간'이다. 물론 이 투명인간은 웰스가 창조한 원조 투명인간은 아니고(그는 1899년엔 이미 죽었으므로), 그의 연구 업적을 훔친 또 다른 투명인간이다. 세번째 답은 웰스와 더불어 19세기 SF소설계를 양분했던 대작가 쥘 베른이 제공한다. 우리에게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 '나디아'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진 '네모 선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전설의 '노틸러스호'를 몰고 나오는 것도 잊지 않는데, 그것은 베른의 대표작 '해저 2만리'에서 창조된 '세계 최초의 잠수함'이기도 하다. 네번째 답은 오스카 와일드가 창조한 '도리언 그레이'이다. 자신 대신 초상화가 나이를 먹는다는 원작의 설정답게, '도리언 그레이'는 '젠틀맨 리그' 속에서도 불사조로 묘사된다. 이 외에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든지, 허먼 멜빌이 창조한 '이슈메일', 또 코넌 도일 작품의 매력적인 악당 '제임스 모리에티' 등이 세기말의 모험에 동참하고 있다.
케이블 TV에서 우연히 '젠틀맨 리그'를 보고는 기분이 묘하게 좋아져 버렸다. 딱히 좋은 시나리오도 아니고 기막히게 멋진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터질 것만 같은 가슴으로 책장을 넘기던 유년 시절, 그 추억의 '초인'들을 잠시나마 연상케 할 수 있다면, 그런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2시간의 값어치를 하는 셈이다.
"해상에서는 아직 독재자들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서로 싸우고, 집어삼키고, 온갖 지상의 추잡스러운 짓들을 옮겨오고 있습니다. …… 그러나 물속으로 10미터만 들어가 버리면, 그들의 권력은 무력화되고, 그들의 영향력은 사라지며, 그들의 힘은 소멸되어 버립니다. …… 이곳, 바다의 품에서 사십시오!"(네모 선장의 말) 『해저 2만리』 쥘 베른 지음/김석희 역/열림원/전 2권
"톰은 하얀색 페인트가 들어있는 양동이와 긴 솔을 들고 길거리로 나섰다. 톰은 울타리를 한 번 훑어보았다. 여름날의 즐거움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 톰에게는 우울함만 남았다." 『톰 소여의 모험』 마크 트웨인 지음/지혜연 역/시공주니어/371쪽/1만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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