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그 나무는,」/ 유홍준

입력 2009-03-30 06:00:00

그 나무는 지겨운 초록빛이다

그 나무는 너를 물들여 죽이려 한다

그 나무는 네 눈알을 후벼팔 까마귀를 깃들인다

그 나무는 네가 목매달아야 할 가지가 자란다

그 나무는 네가 입어야 할 관을 키운다

그 나무는 네 아버지의 주검 위에 자란다

죽음을 권하는 나무를 유홍준의 시에서 만난다. 시인 유홍준의 시적 터전인 진주의 진주대교 교각마다 커다란 반지가 주조되어 있다. 의기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할 때 왜장을 깍지끼려고 낀 그 반지의 충격과 동일한 파장을 가졌기에 유홍준의 시는 새롭다. 초록은 지겹고, 그 초록은 다시 너를 물들이는데 초록이 된다는 것은 죽음에 다름 아니고, 그 죽음을 찬양하기 위해 나무는 까마귀들을 키우고, 너가 목 매달 가지가 그 나무에서 자라고, 너가 눕어야 할 관도 나무의 몫이고, 이건 몰랐지? 아비도 이 나무 아래서 죽었다!는 충격. 도대체 무엇이 나무에서 죽음을 찾아냈던가. 최소한의 이유가 있다지만 유홍준의 나무는 숨막히도록 도발적이다. 나무의 자유자재한 상상력를 좌지우지하는 나무의 폐허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유홍준의 나무는 바로 광대무변한 상상력의 나무, 우리의 일상을 벗어나서 우리의 본질을 자극하는 나무, 죽음이라는 가장 무거운 주제로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나무이다. 아, 그렇구나 시인의 그 나무는 에둘러가기이다. 폐허를 통해서 우주목이라는 본래의 성질로 되돌아가려는 나무. 유홍준의 시작 노트를 빌리자면 '욕을 퍼부을수록 그리운 것들은 사라'지는 법이다. 오늘 나는 백합나무 아래 잠시 머물러 백합나무 그림자를 자세히 보았다. 잉카의 태양 문양을 닮은 백합나무 잎사귀 하나 떼어서 입에 물고 길을 건너는 내 마음은 유홍준의 나무에 시달리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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