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의 꽃은 공연자들이다. 이들은 손님을 불러모으고 술과 음식에 감성을 부여한다. 이 감성은 주로 '웃음 엔돌핀'이다. 일행끼리 얘기나누는 것보다 이들을 보면서 함께 즐기는 것이 더 행복할 때가 많다.
이런 덕분에 클럽을 운영하는 주인은 인기있는 공연자들에겐 돈다발을 안겨주고, 때론 타 업소에서 소문난 이들을 스카우트하기도 한다. 클럽에선 한 때 '너훈아', '조영필''등 짝퉁가수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요즘은'각설이'가 품바공연과 함께 넉살좋은 입담으로 인기 캐릭터로 등장했다. 또 맥주 맛보다 더 인기있는 밴드도 있다. 지역에서 꽤 알려진 대구 달서구 한 나이트클럽의 '각설이'와 수성구 모호텔 맥주집의 라이브 밴드 'X-Project'를 만났다.
MBC 코미디언 출신으로 한때 전국구 인기 코믹DJ로 이 업계에서는 꽤나 알려진 달서구 나이트클럽 '각설이'의 주인공은 이덕(48)씨다. 그는 클럽을 직접 차리려다 몇 차례 쓴 맛을 봤다. 그는 바닥에서 시작하는 심정으로 달서구 클럽에서 밤이면 손님들을 즐겁게 하는 공연자로 무대에 서고 있다.
수성구 두산동 라이브 밴드 X-Project는 가게에서 직접 빚은 맥주만큼이나 익히 알려진 그룹밴드이다. 이곳을 몇번이라도 찾은 이라면 사진을 보며 '아~, 그 필리핀 밴드!'라고 할 것이다. 이들은 이 라이브 무대에 선 지 벌써 5년째다. 자신들을 'Musician'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현재 하는 일에 대해 '대만족(satisfied and happy)'이라고 했다. 물론 이토록 즐겁게 '일'하다 보니 관객들도 당연 만족도가 높다.
◆욕쟁이 각설이 '아줌마들 사로잡다'
매일 밤 9시 50분과 12시 5분이 각설이 공연시간. 지난 23일 만난 '각설이' 이덕씨. 20여분간 손님들을 쥐락펴락했다.
성(性)적 내용으로 개사한 품바타령을 멋들어지게 한 소절 뽑은 뒤 한 테이블 손님에게 찾아갔다. 각설이 "어떤 관계죠", 한 중년 커플 "부부인데요". 각설이 "야! 이 열(?)방새야, 부부가 어떻게 이런데 오냐"고 했다.
또 야한 퀴즈를 낸 뒤 동참한 손님들에게 선물로 엿을 줄 때도 "에라이! 엿 먹어라"며 익살스런 표정으로 욕을 퍼붓는다.
'각설이'의 주인공은 '조지 포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5년 전 이 나이트클럽 개업 당시 '각설이'로 관객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 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전국 각지를 돌며 '각설이'로 이름을 날리다 다시 원조 대구로 찾아왔다.
그는 주로 여성 손님들을 상대로 껄쭉한 농담과 함께 직설적인 욕설을 퍼부어댄다. 확실한 욕쟁이다. 욕도 험하다. 하지만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욕이 마치 식당 욕쟁이 할머니처럼 자연스레 관객들과 호흡하며 함박웃음을 자아낸다.
공연은 대체로 성공적이지만 잘 웃기지 못할 때나 손님이 적을 때는 본인도 민망하다. '빵! 빵! 터져야 하는데 이상하다'며 고개를 떨구게 되고 괜히 점잖은 손님한테 실례를 하지 않았나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공연이 '웃음'을 위한 것이기에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씨의 공연에는 웃음에 대한 철학이 녹아있다. 그는 "미국의 케겔이라는 의학박사가 암환자에게 1년간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원없이 웃게 하니까 암세포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각설이' 공연도 더 큰 웃음을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고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런 자세 때문에 매일하는 각설이 공연이지만 할 때마다 레퍼토리도 바뀐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감출 수 없는 끼를 타고 났다. 클럽 DJ가 하고 싶어 고교시절부터 미성년자임을 감추기 위해 가발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황기순, 조정현, 김정렬 등과 함께 MBC코미디언 공채 4기에 합격해 '청춘 만만세'의 '웃음따라 삼천리'라는 코너에 출연하다 부산 해운대 코모도클럽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클럽에 인생을 걸었다. 그 후 20년 넘게 대구, 부산, 수원, 안산, 속초, 강릉, 제주, 제천 등 전국에 클럽이라는 클럽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다녔다.
그는 "지금은 각설이 공연자이지만 한때 댄스코믹 DJ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며 "이곳에 오는 이들에겐 무조건 큰 즐거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자신이 경영하는 아시아 유일의 '웃음클럽' 대표이사가 되는 것이다.
◆라이브밴드, 'X-Project'
"Thank you very much, We were X-Project. 감사합니다."
수성구 모호텔 맥주집은 직접 빚은 맥주로 주당들 사이에 회자돼 왔다. 하지만 맥주만큼이나 얼굴이 알려진 밴드의 이름 'X-Project'는 생소하다. 얼굴을 보면 '아~그 필리핀 밴드!'라고 할 것이다.
베이스를 맡고 있는 팀의 리더 '로렌 호손(34·Lauren Joson·34)', 기타를 맡은 '커스킴 아코스타(Kerskim Acosta·29)', 건반을 치는 민머리의 '빈센트 데라라(Vincent De Lara·31)', 드럼을 치는 '서니 레갈라도(Sunny Regalado·28)', 보컬을 맡은 '알딘 토로사(Aldin Tolosa·31)', 홍일점이자 '진(Jin)'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조렌 드아시스(Joren De Asis·31)'.
이들은 필리핀 마닐라 출신의 6인조 혼성 그룹. 두달 전까지는 7인조였지만 집안 사정으로 귀국해버린 까까머리 '로벨라(Lovela·31·여)'의 공백으로 앞으로는 6인조로 활동하게 된다고 했다.
이들에겐 아직까지 자체 제작곡은 없었다. 하지만 R&B는 물론 팝, 라틴음악 심지어 한국 가요까지 구성지게 뽑으니 맥주와 음식을 마시고 씹던 입은 쩍 벌어지고, 뷔페를 담던 손놀림도 멈칫하게 될 정도.
매일 오후 7시 30분이 되면 무대에 오르는 이들. 무대라고 하기엔 드럼, 키보드 등 악기를 넣고 팀원 6명이 들어서면 꽉 찰 정도로 좁은 곳에서 공연을 펼친다. 하지만 400㎡는 족히 넘는 가게 전체를 들었다 놓았다 하기에 이들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단골도 적잖다는 게 손님들의 귀띔이었다.
'이거, 시험에 나오니 집중하라'는 교사의 말에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되듯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30분간 이어진 공연에서 눈과 귀를 떼지 못했다.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을 시작으로 SG 워너비의 '내 사람'과 박현빈의 '곤드레만드레'까지 이어지자, 몇몇은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추기도 했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샌 중년 신사들이었다.
이들이 하루 갖는 공연은 모두 5번. 7시 30분부터 30분 공연, 30분 휴식, 30분 공연, 30분 휴식을 반복해 12시가 되면 막을 내린다. 공연의 최정점은 관객이자 맥주를 즐기는 이들의 취기가 거나하게 오른 오후 9시. 이때부터 관객들은 'X-Project'가 "박수 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박수를 치고, 어느새 발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때문에 술이 불콰하게 오른 일부 관객은 "노래 정말 잘한다"며 술을 부어주며 마시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들은 "그런 모습에서 약간의 문화적 차이를 느끼지만, 우리가 잘했기 때문에 그들이 고무됐고, 우리를 격려하는 표현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관객들의 환호는 금세 음반 기획자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2005년 2월 5일 첫 공연을 한 뒤 매년 입소문을 타고 음반 발매 제안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앨범을 제작할 시간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들의 대구 생활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빔밥, 김치찌개, 해물파전 좋아해요"라며 웃는 이들은 쉬는 날엔 팔공산이나 앞산까지 자전거를 타기도 하며 대구시내 이곳저곳을 돌며 쇼핑하는 것도 즐긴다. 특히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들이 타향살이에 질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대구의 여유' 때문. 서니는 "서울에서 2년간 살다 왔는데 밥을 어떻게 먹는지도 모를 정도로 여유가 없었고 정신도 없었다"고 했다.
당분간 대구를 떠날 계획이 없다는 이들은 5년 사이 팀원 중 5명만 바뀔 정도로 단기간 활동하는 팀이 아니다. 아직도 1주일에 2번, 2시간씩 공연을 위해 준비하고 연습한다는 이들은 분명 노래와 연주를 밥벌이로 삼고 있는 '프로'였다. "Thank you very much, We were X-Project. 감사합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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