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출판사 사장은 가정집을 사무실로 만들고 난 이후 밖에서의 약속이 부쩍 줄었다. 사무실이 주택이라고 하면 모두들 한결같이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한단다. 덕분에 한달에 80만원이나 들던 차 기름값이 10만원으로 줄었다. 어쩌다 일이 풀리지 않으면 직원들 모두가 집 마당에 나와 풀을 뽑고 정원을 가꾼다. 웃고 떠드는 사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고 직원들의 유대감은 깊어진다. 자신의 집을 사무실이나 문화 공간으로 꾸미는 곳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집을 출판사로
홍익포럼의 나윤희 대표는 지난 2005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정집을 사무실로 꾸몄다. 대구 중구 대봉동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집을 구입해 사무실로 만든 것이다. 주위에서 왜 가정집에 사무실을 차리느냐고 말렸지만 그녀는 출판 작업이 공간과 밀접하다는 사실을 오랫동안의 작업 과정에서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에 마당 있는 집을 골랐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대성공이라며 만족해 한다.
나씨는 "의뢰인들이 가정집 대문을 열고 마당을 걸어 들어오면서 이미 출판사에 대한 신뢰감을 갖고 교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푸근함과 따스함이 의뢰인과의 대화를 더욱 쉽게 이끌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그는 공간의 특성이 주변의 문화를 바꾸고 사람을 바꾼다고 믿는 사람이다. 출판사가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를 잡자 이곳 주변은 많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문화를 내걸고 새롭게 꾸며진 집들이 곳곳에 들어섰고 외부인과의 소통도 쉬워져 열린 공간이 됐다. 지나가는 이들이 담벼락 사이에 서서 물끄러미 정원을 바라보는 모습은 이제 낯익은 풍경이 됐다. 가끔은 지나가는 사람들과 정원을 매개로 대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는 이곳에서 공간이 가지는 역할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한다.
직원들 역시 가정집을 사무실로 꾸미는 작업에 박수를 쳤다. 따뜻한 봄날에는 정원에서 풀을 뽑고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변화를 느끼면서 일에 대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색깔을 얻는다고 했다. 계절을 편집하고 집을 편집하는 일에서부터 출판 디자인의 에너지를 얻는다고 자랑했다.
◆집 한쪽을 화랑으로
지난해 연말 수성구 두산동 주택 한쪽을 화랑으로 꾸민 서양화가 이철희·차경씨 부부. 화가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이들 부부도 40여년간 국내외에 발표했던 작품을 보관할 소장고의 필요성을 느껴 고심하던 중 살고 있는 주택 한쪽을 활용해 화랑을 만들었다.
차경씨는 "갤러리를 꾸미게 된 것은 단순한 소장고의 의미를 넘어 작품 애호가 및 이웃들에게 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갤러리에서 자신의 작품을 항상 감상함으로써 다음 작품 제작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불어로 예술가족이라는 이름의 '갤러리 라르파미예 '(Gallery L'art Famille)는 보도 사진을 전공한 큰딸 수진씨, 조소 전공인 아들 준욱씨, 그리고 애니메이션 사운드 레코딩을 전공 중인 작은딸 수연씨 등 가족이 모두 예술 활동을 하기에 자연스레 형성된 공간이다.
"주거공간과 작업 공간이 함께 있어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좋고, 집이라는 공간에 작업실과 갤러리가 있으니 자극이 돼 더욱 좋다"는 이들 부부는 넓은 마룻바닥의 큰 전시장을 보면 늘 작업 충동을 느낀다고 했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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