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부신 봄날이다. 꽃들에 취해 취재 장소를 향하다 기자는 차를 돌려 대봉동의 어느 건물 앞에 멈추었다. 참으로 덩치가 큰 건물이다. 지난겨울부터 그곳을 지날 때면 애써 외면했으나 이 날은 빌딩 앞에 기어코 차를 세웠다. 봄날의 감상이 아마도 그렇게 만든 듯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매장은 참으로 조용했다. 한낮의 밝은 햇살만이 넓은 매장을 조용히 지키고 있을 뿐 찾아오는 손님도 전화 벨도 울리지 않았다. 매장 안은 그대로였으나 온기는 없어 썰렁했다.
디자이너 김선자씨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5개월. 시간은 늘 그렇듯 햇빛은 '미스김텔러'라고 쓰인 커다란 건물을 무심히 비추며 지나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 건물이 매물로 나와 있다고 했다. 덩치가 너무 크기에 선뜻 임자가 나서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가게를 지키고 있는 점원에게 늘 이렇게 조용하냐고 물었더니 '김 선생님이 떠나신 이후 찾아 오는 손님이 없다'고 했다. 가게 안에 있는 옷들은 누가 만든 것이냐는 물음에 '지난해 김 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라고 답했다. 건물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면 개인 숍은 없어지고 대구백화점 안에 있는 매장은 김선자씨의 여동생과 조카가 꾸려 나갈 것 같다고 덧붙였다. 30년 넘게 열정과 땀으로 이룩해 놓은 한 세계가 그녀의 죽음과 함께 그렇게 지워지고 잊혀가고 있었다.
한국 패션디자이너 1세대. 1971년부터 미스김텔러라는 브랜드로 가게를 연 김선자씨는 대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였다. 그녀를 떠올리면 이국적인 용모와 체격, 조용한 말투가 생각나지만 그녀에게는 아주 독특한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매장을 고급 사교클럽처럼 만드는 기술이었다. 그녀의 가게를 들락거려야 유명 인사가 되는 그런 분위기를 연출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매장에는 대구의 내로라 하는 여성들이 자주 보였고 각종 정보가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지난해 봄 후배 여기자로부터 김선자씨가 아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전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조용했다. ' 건강하시라'는 말에 '고맙심더'라는 답을 들은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지난여름 공식석상에서 그녀는 자신의 병을 숨긴 채 '모두들 건강하시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 지인은 전해주었다.
이 봄날 그녀가 문득 떠오른 것은 봄날의 꽃들 때문이다. 봄꽃의 아름다움이 한순간이듯 그녀의 화려한 명성도, 그녀의 큰 건물도, 그녀의 수많은 옷들도, 그녀와 함께 떠나가고 있었다. 참으로 아쉽고 허무하다. 그러나 어쩌랴. 모든 것은 한때라는 꽃들의 외침을 위로 삼으며 불후의 명곡 '봄날은 간다'를 한번 불러제껴야 할 것 같은 봄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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