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를 이루다] 시계수리 35년 장태호씨

입력 2009-03-26 06:00:00

세심한 손길로 버려진 시간 되살리죠

'재깍재깍' 35여 년. 태성당(대구 동구 신천동) 장태호(48) 사장은 이제 조그마한 시계부품만 봐도 그것이 어느 시계 부품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시계든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그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묻은 연륜과 내공에서 나오는 듯 싶다. 지금까지 족히 7만 개가 넘는 시계가 그의 손끝을 스쳐갔으니 말이다.

"시계수리는 버려져 죽은 시계가 다시 숨을 쉴 수 있도록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잖아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을 가능케 하는 매력이 있어요."

신천주공상가에 위치한 그의 시계방에 들어서면 독특한 장면을 볼 수 있다.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101㎝(40인치) LCD TV에서 시계 내부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는 것. 이는 장 사장이 공장에서 쓰이는 확대경 시스템을 개조, 모니터를 통해 고객이 시계부품이나 작동원리 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전에 시계선진국인 스위스 등지에 견학을 많이 갔어요. 스위스 현지 시계방을 찾았을 때 조그마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손님들에게 시계 내부를 보여주더라고요. 그 모습에서 착안해 5년 전에 설치했죠."

고객 시계 내부를 대형 화면을 통해 보여주면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설명하면 고객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믿음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장 사장은 "이런 시스템은 전국에서 유일할 것"이라며 "손님들도 이곳을 찾으면 무척 신기해한다"고 말을 이었다.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명품기술로 입지를 굳힌 장 사장. 하지만 그의 과거는 숱한 불행으로 굴곡졌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쓸 수 없었다. 그러자 부모는 그를 시냇가에 버렸고 이후 고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평소 책을 좋아해 많이 읽었죠. 그러자 주위 학생들에게 잘난체 한다며 갖은 폭행과 괴롭힘에 시달렸죠. 사는게 너무 힘들어 자실 시도도 여러차례 했어요."

그런 그에게 삶의 희망을 준 것이 시계수리였다. 실습시간에 배운 시계수리를 그는 자신의 천직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실습이 끝나고도 독학으로 많은 시간을 시계 만지는데 할애했다.

"당시 대구 교동시장에 시계수리 기술자들이 많았어요. 그들을 찾아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깨 너머로 기술을 익혔다 숙소로 돌아와 연습했죠. 시계를 분해했다 고치는 연습으로 시계부품도 숱하게 망가뜨렸죠."

그는 이 같은 열정으로 1985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목발을 짚고 대통령으로부터 상을 받는 사진은 아직도 그의 자랑거리다. 장 사장은 메달 포상금 등을 보태 그 해 안동에서 자신의 첫 시계방을 열었다. 이후 이곳저곳으로 옮겼다 1989년 지금의 신천동에 둥지를 튼 것이다. 그는 빼어난 손재주로 입소문이 나면서 시계방은 날로 번창해 한때 분점과 연구소까지 차리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IMF 직후 여기저기 잘못 선 보증이 봇물처럼 터져 큰 시련을 맞았다. "오기로 버텼죠. 어렸을 때부터 갖은 어려움을 겪다보니 만성이 좀 된 것 같아요."

그의 시계방에는 이젠 쓸모없을 것 같은 시계들이 잔뜩 쌓여있다. 20여 년전부터 다른 사람이 길가에 버렸거나 땅 속에 묻은 시계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못 쓰는 시계들이지만 부속품은 재활용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죠. 지금은 집에 쌓인 것까지 합쳐 9천개 정도 될 거예요.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활용됩니다."

장 사장은 갈수록 시계수리하는 기술자들이 부족하다고 걱정이다. 점차 명품이나 고가 브랜드 시계수리에 대한 수요가 느는데 기술자들은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 "한때 중국산 저가시계나 전자시계가 유행할 땐 기술자들이 많았죠. 하지만 명품이나 고가 브랜드 시계는 좀 더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거든요. 스위스 등지에서 연수도 받아야 하고요. 그렇다보니 기존 기술자들이 고급 기술을 연마하지 못해 시계수리 기술자들이 주는 것이죠." 이렇게 점차 기술자들이 사라지면 결국 외국으로 시계를 보내 수리를 해야 하고 외화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

그는 오래 전부터 제자들을 키우고 있다. 지금도 견습생 4명을 가르치고 있는 것. 그의 지도를 거친 학생들은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나가 지금까지 11연패의 위업을 이루기도 했다. "시계수리를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인내력과 집중력이 필요해요. 1㎝도 안 되는 부품들을 핀셋으로 잡고 고쳐야 하는데 간혹 부품을 망치는 경우가 있죠. 한마디로 짜증이 나는데 이를 잘 극복해야 하죠. 또 수시로 공구 등을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처음엔 의욕이 넘쳐 시계수리를 배웠다 포기하는 학생들도 적잖다고 한다.

장 사장은 최근 시계부품을 이용한 독특한 작품전을 열었다. 그에겐 새로운 도전인 셈. 오랫동안 시계를 연구하다보니 이를 시각적으로 작품화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 3년 전부터 틈틈이 시계부품을 이용해 소나 박쥐, 사슴 등 동물들로 형상화시켰고 이를 전시했던 것. "관람객들이 정말 신기하다는 반응이었죠. 시계부품도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반응들이 무척 뿌듯했죠."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대작을 만들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무료로라도 제자를 양성하는 일에 힘쓰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053)422-7883.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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