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식목일이라고 하면 의당 나무심기가 제일 먼저 연상이 되어야 할 테지만, 그 자리는 언제부터인가 '산불'이라는 놈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아직 푸른 잎이 돋아나기도 전에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성묘객과 등산객의 출입이 부쩍 잦아지는 계절이다 보니 극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시기이지만, 예외없이 들려오는 대형산불소식은 그저 사람들의 가슴에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이러한 산불은 산림자원과 생활터전만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때로 소중한 문화유산까지 파괴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 2005년, 그해 식목일에 양양 낙산사에서 벌어졌던 산불화재로 인한 문화재 대참사가 떠오른다. 그때의 기억들이 생생하건만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당시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던 낙산사 원통보전, 홍예문, 꽃담장 등이 소실되거나 큰 피해를 입었고, 특히 이 와중에 보물 제479호인 낙산사 동종도 종각으로 옮아붙은 불길 속에 녹아내려 결국 그해 7월 7일에 보물지정에서 해제되는 수난을 당하였다. 조선 예종 때 선왕인 세조를 위해 만들어진 유서 깊은 종은 500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넘기고도 건재했으나, 느닷없는 산불로 하루아침에 고철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직후 혹독한 산불피해로 벌거숭이가 되어버린 이곳에서는 이왕에 잿더미로 전락한 건물터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보존할 만한 역사적 가치가 입증되어 지난해 말에는 도리어 낙산사 일원이 국가사적 제495호로 승격 지정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참으로 산불피해가 가져다준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산불로 인하여 국가지정문화재가 완전히 파괴된 상태에 이른 사례는 또 있다. 보물 제387호 회암사지 선각왕사비가 바로 그것이다.
이 비석은 고려말의 고승으로 흔히 나옹화상으로 알려진 선각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양주 회암사에 세워진 것이었다. 하지만 600년도 더 된 이 비석은 1997년 3월에 발생한 산불이 번져 비석의 보호각으로 옮아붙는 바람에 뜨거운 불길에 갈라 터지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산불발생의 원인이 성묘객의 부주의에 따른 것이고, 더구나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보호각이 오히려 비석을 파괴하는 촉매역할을 하였으니, 이건 그야말로 우리들이 자초한 재앙에 다를 바 없었다.
흩어진 파편들을 수습하여 겉모습이나마 겨우 짜맞춰 놓은 이 비석은 보물지정해제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나, 지금은 불교중앙박물관의 수장고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원래의 자리에는 모조비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상태가 되어 있다. 비석을 파괴하는 데 크게 일조를 했던 보호각의 타다 남은 기둥들도 원위치 옆의 경사진 공간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곳을 찾는 답사객들에게 씁쓰레한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문화재의 관리연혁을 살펴보면, 굳이 산불이 아니더라도 해방 이후 전란이나 부주의로 인한 화재피해로 보물지정에서 해제된 사례들이 적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청평사 극락전, 보림사 대웅전, 관음사 원통전, 진주 촉석루, 안동문묘, 송광사 백설당과 청운당과 같은 것들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파괴되어 사라진 보물들로 이미 기억조차 무뎌진 사례들이고,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1962년 이후로도 쌍봉사 대웅전(보물 제163호), 쌍계사 적묵당(보물 제458호), 금산사 대적광전(보물 제476호) 등이 이 목록에 포함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지난해 방화사건으로 문루가 무너져내린 국보 제1호 숭례문(남대문)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화재를 제대로 보호하는 길은 그저 예방 또 예방, 조심 또 조심이 최상인 것이다.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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