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이 빚어낸 낙동강 최고의 비경
삼백(三白, 쌀'누에'곶감)의 고장 상주를 찾았다.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비친 넓디넓은 상주 이안들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의성 안계들, 경주 안강들과 더불어 경북 3대 평야인 상주 이안들에도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다. 황야한 들판에는 논갈이와 군데군데 겨우내 숨어서 월동한 해충을 박멸하기 위한 연기들이 모락모락 봄 하늘로 피어오른다. 싱그러운 바람, 그리고 광활한 대지와 푸른 하늘이 봄을 손짓한다.
농촌에서 가장 봄을 빨리 느낄 수 있는 곳은 5일장이다. 그래서 함창 5일장으로 내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시골장터에는 이미 봄이 싹트고 있다. 입구엔 생동하는 어린 묘목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없는 것 빼놓고는 다 있다는 시골장터. 청화산, 국수봉 자락에서 캐온 냉이'달래'쑥'머위들이 청정함을 뽐낸다. 백두대간 자락에서 자란 과일과 채소들이 빨리 사가라는 듯 손짓한다. 달랭이 한 두릅에 얼마냐고 묻자 장터 아주머니는 "2천원하는데 싸게 해줄테니 가져가"라고 손목을 잡아 당긴다. 농기구 철물점'옹기가게'솥가게'포목점 등에는 옛날 빛바랜 추억의 흔적들이 묻어 있다. 연탄집게, 앉은뱅이 스케이트, 주물 무쇠 솥, 곡괭이 자루…. 방앗간'양복점'사진관'수의점 등은 옛 추억을 곱씹게 한다. 전통 엿집이 눈에 띄어 엿을 사려니까 주인은 옆집 주점에서 막걸리 마시러 가고 없단다. 옛날 시골장터에 비해 시끌벅적함은 줄었지만 그래도 시골장터엔 사람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시골장터의 넉넉한 인심을 뒤로 한 채 낙동강 1천300리 최고의 비경 경천대(擎天臺)로 발길을 돌렸다. "가노라 옥주봉아 있거라 경천대야/요양만리길이 멀지만은 얼마나 멀며/만장이나 되는 금부용이 하늘로 솟아 있으니…/붉은 안개 흰구름이 그늘을 이루고…/"
병자호란 후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갈때 주치의로 따라간 우담 채득기 선생이 경천대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읊은 봉산곡(鳳山曲)이다.
강원도 태백 황지못에서 발원해 부산까지 뛰어난 풍광과 사연을 간직한 채 흐르고 있는 낙동강 1천300리. 굽이치며 이어지는 낙동강 물길 중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이 경천대이다.
이런 연유일까. 하늘이 스스로 만든 절경이란 뜻으로 '자천대'(自天臺)라는 또다른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상주IC를 나와 외답 삼거리에서 경천대에 이르는 6km 남짓한 길은 편안하다. 파릇파릇 샘솟는 나뭇가지에 봄 내음이 앉아있다. 경천대관광단지로 들어서자 먼저 임진왜란 당시 명장 정기룡 장군 동상이 눈길을 끈다. 육지의 이순신으로 불리며 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정기룡 장군의 도도한 기상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동상을 지나 오르막길을 걷다보면 울창하게 쭉쭉 뻗은 소나무 숲길 사이로 전망대 가는 길이 나온다. 경천대 전체를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는 황톳길과 300m의 돌탑이 옹기종기 이어진다. 싱그러운 바람과 청아한 산새소리를 벗삼아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보면 신선의 세계로 빨려드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가파르다 싶어 숨을 몰아쉴 때면 코끝에 번져오는 솔향 내음이 심신의 피곤을 쫓아준다. 전망대에 섰다. 경천대를 돌아가는 U자형의 낙동강이 굽이친다. 폭넓은 푸른 비단띠를 두른 것처럼 반원을 그린 낙동강이 도도하다. 안동 하회나 예천 회룡포의 물길이 산하를 부드럽게 감싸고 흐른다면 이곳은 박력이 넘쳐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봄 하늘은 곳곳에서 지저귀는 이름모를 산새소리와 함께 우화등선(羽化登仙'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감)의 경지에 빠진다. 강 건너 저 멀리 회상 들녘은 가을의 풍요로운 수확을 생각하듯 봄 논갈이 채비에 분주하다. 전망대에서 10여분 숲길을 내려가면 낙동강 물길 중 가장 아름답다는 경천대에 이른다.
물길 속에서 하늘로 곧추 닿을 듯 벼랑위로 기기묘묘한 바위가 올라서 있다. 절벽 위로 소나무 숲이 우거진 경천대는 푸른 물과 금빛 백사장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기암절벽은 쳐다만봐도 아찔하다. 바위를 뚫고나온 노송의 푸른 잎은 봄햇살에 더욱 반짝인다. 전망대보다는 멀리 보이지 않지만 눈앞 절벽에서 휘감겨 흐르는 강물이 장엄해 낙동강의 절경을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경천대 바로 밑에는 무우정(舞雩亭)이 서 있다. 수백년 풍상을 이기며 꿋꿋하게 고결한 기상을 잃지 않은 무우정은 우담 채득기 선생이 청나라에서 돌아와 벼슬을 마다하고 은거한 곳. 우담은 이곳에서 학문을 닦으며 북벌의 때를 기다렸다. 아찔한 절벽은 게으름을 경계함이요, 푸른 솔잎은 충절의 마음, 깊은 강물은 우국의 애끓음이리라.
무우정에서 산책로를 따라 남쪽 강가로 내려가면 드라마 '상도' 세트장이 있다. 가까이서는 허술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강변풍경과 초가집이 운치있게 어우러져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다.
상도 세트장을 돌아 오른쪽 출렁다리와 구름다리를 건너 육각정에 이르니 숨이 턱에 차오른다. 대자로 육각정 마루에 몸을 누이고 눈 감으니 산들산들 봄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봄빛에 녹아내린 대지는 평온을 넘어 고요하며 세상사 모든 근심은 피안의 세계로 물러간다. 문득 눈을 떠니 파아란 봄 하늘이 억겁의 세월 속에서 나를 손짓하며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라는 듯 한다.
■가볼만한 박물관
◇상주자전거박물관
상주 남장동에 있다. 오늘날의 자전거가 생겨나기까지 국내외 자전거의 발전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재미있고 독특하게 생긴 이색자전거들도 만나볼 수 있다. 평상시엔 볼 수 없는 산악용, 경기용, 묘기용 자전거를 비롯해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골동품 자전거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료는 무료.
◇상주박물관
사벌면 삼덕리. 상설전시실에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상주에서 출토 또는 수집된 토기류, 금속류, 지의류 등 총 2천4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장롱 속 한평생, 우리 할매 시집 이야기' 특별전(6월 30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은 휴관).
■둘러볼만한 유적
◇남장사
신라 흥덕왕 7년에 창건된 경북팔경 가운데 하나. 보물 제990호 비로자나철불좌상과 922호 목각탱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극락보전을 비롯해 영산전'보광전'근륜전'일주문 등이 현존하며 절 주변 계곡은 깊지 않으나 입구에 있는 장승은 그 인상이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어 볼수록 정감이 간다.
◇충의사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정기룡(鄭起龍, 1562~1622) 장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신도비, 묘소와 함께 1974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처음에는 약 16㎡ 규모의 작은 사당이었으나 1978년 호국선현유적지 정화사업으로 총 1만 3천209㎡의 부지에 사당'전시관'내외삼문'기념비'관리사무소 등을 세워 확장 정비하였다. 전시관에는 보물 제669호인 5점(교서 2점, 교지, 신패, 옥대 각 1점)과 동산문화재(교지 19점, 매헌실기 판목 58판)를 전시하고 있다.
◇도남서원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류성룡 정경세 이준 등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향하고 있다. 1606년(선조39년) 상주 도남동에 창건, 1676년(숙종2년) 임금으로부터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797년(정조21년) 동'서재를 건립,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92년 지역 유림들이 힘을 모아 강당 등을 건립하였고 이어 동'서재를 지었다. 경내에는 도정사'손학재'민구재'정허루'장판각'전사청'영귀문'고직사'일관당'입덕문 등이 들어서 있으며 해마다 음력 2, 8월 하정일(下丁日)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인물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임란북천전적지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 때 순변사 이일이 인솔한 중앙군과 상주에서 창의한 의병들이 북상하는 왜군의 선봉 주력부대와 싸우다 순절한 옛 싸움터. 후세 사람들이 이곳에 사당을 세워 당시 순절한 8명을 배향하였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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