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무서운 경찰, 불쌍한 경찰

입력 2009-03-18 10:55:38

조직 내.외부 부도덕 근절 통해 무섭지도 우습지도 않은 경찰로

어린시절 음식 투정을 하거나 뭔가 떼를 쓰며 울 때마다 할머니는 맏손자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특별한 처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을 어귀를 몇 번씩이고 내다보는 척하며 "순사 온다!"고 은근히 겁을 주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그랬다. 어느 집이건 우는 아이를 다잡는 데는 과자보다도 더 약발(?)이 잘 듣는 비방이 바로 巡査(순사'일제 때 경찰계급)의 출현 경고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경찰에 대한 이미지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잘못하거나 지은 죄가 없을 성싶지만 일단 잡혀가면 뭔가 경을 치고 나올 것 같은 선입관 때문이었다.

10'26에서 5'18로 정국이 요동을 치던 격변기와 민주화운동이 요원의 불길 같던 시대에 대학생활과 청년기를 보내면서 경찰을 향한 시선에 부정적인 요소가 더 추가되었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을 투옥하고 고문했던 친일 경찰에 대한 증오심과 군사독재정권의 방패막이가 되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에게 최루탄을 난사하던 시위 진압 경찰에 대한 거부감이 뒤섞인 그런 것이었다.

신문기자가 되어 경찰이란 기관을 취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리고 경찰 간부와 일반 형사들과도 더러는 허물없이 지내면서 어린시절 비롯된 경찰에 대한 공포심은 많이 희석되었다. 하지만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던 '순사에 대한 두려움'과 최루가스 자욱한 골목길에서 곤봉을 휘두르며 뒤쫓던 '백골단'에 대한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민중의 지팡이'란 말이 유행하던 초년기자 시절, 경찰의 한 고위간부와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농담 반 진담 반의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지금도 개인적인 일로 경찰서에 들어가려면 왠지 모를 두려움이 앞선다"고…. 그런데 그 경찰 간부의 화답이 더 걸작이었다. "나도 퇴근길에 사복을 입고 골목을 걷다가 정복 경찰을 만나면 움찔해집니다."

그런데 오늘날 경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어떤가. 혹여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근무 중인 경찰관에게 폭언을 하고 파출소(지구대)의 집기를 파손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과 집단의 이익과 권리 주장에 걸림돌이 된다면 돌을 던지거나 폭행을 가해도 괜찮은 대상으로 치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시위대가 정복 경찰을 집단폭행 감금하고 경찰을 상대로 강도행위까지도 서슴지 않는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절박한 생존권이 걸려있고 동기가 정당하다고 해도 명색이 법치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도 되는 것인지. 오죽하면 "도대체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대통령의 탄식이 나왔을까.

만약 미국이나 영국'프랑스'일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 나라 경찰은 과연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리고 그 나라 언론과 국민들은 그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여기서 '한국에서 왜 과격시위가 근절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한나라당 모 최고위원의 분석을 잠시 주목해본다.

"선진국에서는 1인 시위를 해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면 바로 시책이나 행정에 반영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불을 지르고 몇 사람이 죽는 사태가 벌어져야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가'하고 눈길을 주는 문화가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다.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을 우습게 여기는 일부의 풍토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치안의 보루인 경찰조직이 어쩌다가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는가. 소위 민주화된 요즘 세상에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 시절의 원죄(?)를 들먹거릴 일도 없을 텐데….

오래전에 개봉됐던 비리 경찰관을 소재로 한 영화 '투캅스'를 새삼 떠올려본다. 이 영화는 당시 국민들의 경찰에 대한 인식의 한 단면을 시사하며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제는 '투캅스'가 사라졌을까.

경찰이 부도덕한 정권의 방패막이거나 조직 내부의 부정'부패가 없다면 불법 폭력시위에 왜 그렇게 무력한가. 지난 12일 부임한 이성규 대구경찰청장과 박진현 경북경찰청장도 당당한 경찰상 정립과 인간적인 경찰관 확립을 취임 일성으로 내놓았다. 이제는 정말 경찰이 그렇게 거듭날 때가 되었다.

조 향 래(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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