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금겹살'

입력 2009-03-13 10:50:53

예천 출신으로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으로 등단한 안도현 시인이 최근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는 책을 냈다. 구체적인 詩作法(시작법) 26가지를 제시한 이 책에서 '제발 삼겹살 좀 뒤집어라'란 글이 눈에 쏙 들어온다. "기억은 시의 중요한 질료가 된다. 삼겹살을 구울 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사람은 삼겹살의 맛과 냄새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기를 불판 위에 얹고, 타지 않게 뒤집고,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더 많은 기억을 소유하게 된다. 그런 사람이 시인이다."

시인뿐만 아니라 삼겹살은 대다수 국민이 좋아하는 대한민국 대표 먹을거리다. 지난해 우리 국민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19.6㎏으로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9㎏이 삼겹살이다. 200g을 1인분으로 치면 1년에 삼겹살 45인분을 먹은 셈이다. 퇴근길 직장 동료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그날의 피로를 풀고, 가족 외식 메뉴로도 각광받는 게 삼겹살이다.

살과 지방 부분이 세 번 겹쳐졌다는 데서 이름이 붙은 삼겹살은 돼지의 배 쪽 부분에서 나온다. 비계와 살코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독특한 맛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삼겹살 사랑은 각별하다. 안심이나 등심, 뒷다리살 등 다른 부위 소비를 촉진하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삼겹살에 대한 소비 과잉은 여전하다. 가장 선호하는 부위를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91.7%가 삼겹살을 꼽아 비율이 가장 높았다.

유별난 삼겹살 사랑 탓에 캐나다 등 외국에서 삼겹살을 상당량 수입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남미'유럽'호주 등 양돈 선진국가들이 우리 시장에 계속 진출하는 이유도 우리나라가 바로 세계 최대의 삼겹살 시장이어서다.

생활 물가가 고공 행진을 하는 가운데 삼겹살 값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마트 경우 1년 사이 삼겹살 가격이 13%나 뛰어 전국평균물가 상승률의 3배에 이를 정도다. 가계 수입이 급감한 서민들에겐 삼겹살이 아니라 '金(금)겹살'이라는 푸념도 나온다. 비싼 삼겹살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앞다리살, 뒷다리살 등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직장 동료끼리 소주 한잔 하거나 가족과 외식할 때 삼겹살 대신 싼 메뉴를 찾는 고민 하나가 더 생긴, 참 고달픈 시절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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