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천원짜리 물건을 팔아도 이렇게 무성의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지난달 27일부터 입주를 시작해야 할 대구 동구 P단지 계약자들은 '입주 준비' 대신 '집회'에 나섰다. 입주자 사전 점검 결과 10여개에 이르는 하자보수 사항이 발생했지만 시공사가 제대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탓이다.
계약자들은 "분양할 때는 온갖 문구로 계약자를 꼬여 놓고 막상 지어 놓은 집을 보니 가스레인지 위 후드가 다르게 달려 있고 복도 창과 싱크대 상판은 분양 당시와 다른 제품을 사용했다"며 "문제는 시공사에서 책임 있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빚을 내가며 수억원을 주고 집을 산 입주민들의 정당한 하자보수 요구에 대해 경영위기를 핑계로 '나 몰라라 식'의 대응을 하는 건설사들이 늘고 있다.
주택경기 호황 시절엔 회사 인지도 등을 고려해 추가 비용을 부담하며 단지 업그레이드 요구까지 나서서 수용했던 건설사들이 최근엔 미분양에 따른 적자를 핑계로 하자보수 요구까지 묵살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이달 말 준공예정인 수성구 상동 한 아파트는 입주예정자들이 나서 사용승인 불허 투쟁을 벌이고 있다. 2006년 말 분양할 당시 홍보물과 모습을 갖춰가는 단지가 상당히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변호사를 선임, 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4월 수성구 시지에 입주한 김모(37)씨는 1년 가까이 시스템 창호와 씨름을 하고 있다. 시공사인 S사를 믿고 1천400만원을 주고 발코니 확장을 했지만 시스템 창호에서 소음이 들릴 정도로 바람이 새 나오기 때문이다.
김씨는 "수십차례 보수를 요구했지만 담당 업체 직원이 나와 문풍지를 발라 주는 게 고작이었다"며 "취득·등록세를 더 내며 합법적으로 확장을 했지만 결국 시공사에 완전히 속은 셈"이라고 했다.
지난 2007년 11월 입주를 시작한 수성구 시지 한 단지는 아예 하자보수를 요구할 창구조차 없는 상태. 30대 입주민은 "마루가 꺼지는데도 이제는 직원들이 나와 보지도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하자 보수 민원이 100여건 넘게 접수돼 있지만 1년째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 같다"며 "시공업체가 구조조정을 해 아예 AS창구가 폐쇄돼 버렸다"고 전했다.
건설사들의 이러한 '배짱 대응'은 중견 업체뿐 아니라 공사능력 평가 10위 내 대형업체들까지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집단 시위를 빼고는 입주민 입장에서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시공사를 상대로 2개월째 하자보수 요구에 나선 수성구 B단지 비상대책위 관계자는 "하자보수 사항이 해결되지 않으면 생활에 불편을 가져오지만 법적인 분쟁으로까지 이어지기 힘든 점을 시공사들이 악용하고 있다"며 "대다수 시공사들이 입주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민원이 줄어들 것을 알고 버티기 대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지난해 겨울철 이후 하자보수로 인해 집단 민원이 발생한 단지가 10여곳이 넘고 있다"며 "해당 구·군청에서 지도에 나서고 있지만 일부 업체들은 하자 보수에 따른 추가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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