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의 달구벌 이야기] (10)가톨릭의 본산 남산동

입력 2009-03-12 08:49:25

서상돈 소유 종묘원 임야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에 헌납

천주교 대구대교구청은 남산3동에 위치하고 있다. 계산오거리에서 남문시장으로 가는 도로를 경계로 삼아 왼쪽은 남산2동이고 오른쪽이 남산3동이다.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였던 서상돈이 종묘원(種苗園)을 운영하던 임야지대로 '앞고개'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이 땅을 대구대교구에 기증했고, 프랑스 선교사들이 교구청을 비롯한 신학대학'성모당'수녀원 같은 건축물을 지으면서 가톨릭의 본산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주교관은 가장 수려하고 남성미가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그러나 1964년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또한 성모당은 교구청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이다. 북향으로 세운 붉은 벽돌 건물로 앞쪽에 넓은 마당이 있는 여성적인 건물이다. 천주교 건축물에 한국식 이름을 붙여 '당'이라 표현한 것도 예쁘고, 앞마당에 펼쳐진 잔디밭에 앉아서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 또한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라는 시의 배경이 되는 곳이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내방했던 곳이며, 고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기도하던 곳이기도 하다. 해마다 '성모의 밤'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밖에도 풍광이 좋은 곳이 숱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서 있는 자리가 빼어난 곳이다. 건축공사는 중국인 기술자 강의관'모문금'타향록이 맡아서 했다. 그들은 드망즈 주교의 주선으로 들어온 산동성 출신의 기술자들인데, 남산동 일원에서 세를 얻어 살다가 나중에 직접 집을 지어서 살았다. 그런가 하면 쌍흥호(雙興號)라는 회사를 차려서 건축업을 하였고, 대구화교 100년 역사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당시 대구의 부자였던 서상돈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집안이 가톨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784년 천주교에 입교한 고조부 서광수 때부터다. 그가 열여덟 살에 독립해 보부상을 시작할 때에도 김수환 추기경의 외조부였던 서용서, 보부상의 거두로 활동했던 최철학, 외사촌형인 김종학 같은 천주교 신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또한 백부 서인순은 대구감옥에서 순교했고, 숙부 서익순은 칠곡 한티에서 체포되어 서울 절두산에서 순교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그가 가톨릭의 정착을 위해 많은 재산을 헌납한 것은 당연하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그렇지만 주교관을 비롯한 건물들의 준공을 보지 못한 채 1913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증손 가운데서 서공석 요한 신부와 서인석 바오로 신부, 그리고 서준석 마오르 수녀가 나왔으니 큰 축복이라 하겠다.

그리고 1946년 설립인가를 받은 대건초급중학교(1951년 중'고교로 증편되었다)가 신학대학 옆자리에 있었으나 1991년 월성동으로 옮겨갔다. 현재 교구청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과 운동장 자리가 대건학교 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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