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반투명의 흰 몸뚱이는 오래된 기억의 숲을 거느린다. 그 몸의 것이었던 미립자들은 낡은 목책을 부수고 일시에 어둠을 터뜨리듯 부서지며 기어 나온다. 희고 작은 애벌레들이 꼬물대며 일시에 길 위로 쏟아지는 풍경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이 촛불들은 혁명이다.
그대의 흰 얼굴과 짙은 눈썹은 가장 견고한 신념의 한 양식을 보여준다. 그것은 동시에 동성애적 연정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이를테면 그대는, 자신의 열정을 온전히 자신에게로 되돌려놓음으로써 무화될 수 있는 자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사이다.
촛불이 켜지는 광경을 묘사한 부분은 밖으로는 고요하고 안으로는 가히 '혁명'이다. 이 안과 밖의 나선형 풍경은 바로 우리의 삶이 그렇듯 격랑이 아닌가. 결국 시인은 촛불을 빌려 자신의 희망을 이야기하려 한다. 흰 얼굴과 짙은 눈썹은 굵은 초라 말할 수 있다. 아니면 촛불을 켜고 무언가에 집중되어 있는 시인 자신! 이라면 그 또한 가히 '혁명'이다. 뜨겁게 불타고 있는 촛불이라고 해도 좋고 거울에 비친 시인이어도 좋다. 촛불의 불타는 모습을 '동성애적 연정'으로 적은 걸 보아서 촛불의 미학은 시인에게 비극의 종말을 준비하는 듯하다. 교양적으로 말해서 촛불은 자신을 태움으로써 세상을 밝힌다는 대승적 상상력이다. 그러나 엄원태의 촛불은 자신을 태움으로써 자신의 모든 것을 샅샅이 비춘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소승적이다. 무엇보다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 자체에 대한 지극한 이해의 한 모습"이라는 점에서 존재하는 것의 '집중력'을 끔찍하게 사랑한다고 적었다. 그 진술에서 살을 발라내면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고백을 받아낼 수 있다. 그 존재에 덧붙이는 그의 말은 "오로지 무화를 지향하는 집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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