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대학의 교정엔 적막이 감돈다. 이따금 씽씽 꽃샘 바람만이 휘젓고 지나갈 뿐 개미 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지 않는다. 학생들이 죄 떠난 교사들엔 쇠사슬이 굳게 잠겨 있다. 삼십여만 평의 드넓은 캠퍼스가 이렇게 허물어져 가는 중이다.
십여 년 전, 고향 가는 길목에 들어선 대학이다. 대도시에서 백여 리나 떨어진 외곽지에 세운 것부터가 애초 무리수를 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꼭 이 학교만의 문제는 아닐 듯싶다.
비약적인 상상일까, 나는 여기서 전쟁 없이도 무너진 도시의 참상을 그려 본다. 설립할 당시만 해도 학생들로 북적거렸던 아름다운 교정이 그 사이에 이렇게 될 줄 미처 몰랐다. 환경 파괴가 가져올 끔찍한 결과를 고발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봄이 되어도 벌과 나비가 날지 않는 죽음의 지구, 생명의 움직임이 사라진 앞날의 세상을 그는 침묵의 봄으로 표현해 놓았다. 하지만 멸망이 어디 환경 파괴로 인한 것뿐이겠는가. 그것 아니어도 인구 감소로 연유된 자연적인 멸망의 전주곡을 보는 듯하다.
K대학의 을씨년스런 모습에서 머잖아 닥칠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떠올린다. 지난해 이 땅의 출생률이 가임 여성 한 명당 1.19명, 올해는 그보다 더 낮아져 0.9명대로 떨어졌다고 통계자료는 말하고 있다. 지금의 인구가 유지되려면 적어도 2.3명은 되어야 한다니 앞으로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수없이 지어 놓은 건물들은 다 무엇 하며 하 많이 만들어진 시설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채만식 선생의 소설 '태평천하'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진(秦)나라를 망할 자 호(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았던 진시황, 그는 진나라를 망한 자 호가 아니요, 그의 자식 호해(胡亥)임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오히려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쉰 줄에 접어든 내가 앞으로 50년 후까지 살아남는다면 백 살이 넘어 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생존해 있을 가망성은 별반 없어 보인다. 그런 나이지만, 오지랖이 넓다 해야 할지 내가 꼭 진시황 같은 입장이 된 심정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장차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부질없는 염려 같지만, 그래도 부모가 자식 걱정하듯 선조 된 도리로 후손 걱정이 아니 될 수가 없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산천을 메아리치던 그 시절이 그립다.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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