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시사 코멘트] 辨奸論(변간론)

입력 2009-03-07 06:00:00

정치권의 난맥과 어려운 경제 상황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만 나오고 있다. 그렇다 보니 언론을 통해 전하는 여러 소식도 희망적인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게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요즘의 암울한 사건 사고 소식은 "人性(인성)은 본래 선하다"는 우리의 소박한 믿음마저 흔들리게 해서 안타까울 뿐이다.

점을 보러 온 여성에게 사채를 빌리게 한 뒤 성매매를 강요하고 화대를 갈취한 무속인 일가족 사건이나 수십억~수백억원씩 투자자들의 돈을 횡령해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린 펀드매니저 사건들도 그러한 예다. 애초에 피해자들이 저들의 奸性(간성)을 알아챌 수 있었다면 그런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딱한 일이다.

예로부터 사회가 어렵게 되면 더 알 수 없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莊子(장자)는 "무릇 사람의 마음이란 山川(산천)보다도 위험하며, 하늘을 아는 것보다 헤아리기 어렵다"고 한 것 같다. 하늘에는 사계절이 있고 아침저녁이 있어 기후의 변화와 시간의 이르고 늦음을 알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어려움이 심할수록 간성은 더 횡행하게 마련이고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고전들은 이에 대해 많은 논설을 남기고 있으며, 어떤 이는 이를 전문적인 이론으로까지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辨奸論(변간론-간신을 분별하는 이론)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六韜'(육도)의 知人論世(지인론세), '呂氏春秋'(여씨춘추)의 八觀六驗法(팔관육험법)과 六戚四隱(육척사은), '人物志'(인물지)의 八觀(팔관) 五視(오시), '說苑'(설원)의 六邪論(육사론) 등이 있다.

奸臣(간신)들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적 약점, 즉 경솔함'사사로운 욕심'두려움'어리석음'자비심'나약함 등을 이용하는데, 여기에 걸려들면 자신과 남을 그르칠 뿐만 아니라 나라를 망하게 하기도 한다. 이들 책에서는 이런 간신 분별 요령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이 단지 옛날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으니 참 걱정이다.

'간신론'이라는 책에서는 간신들의 간성에 대해 "이권싸움에서는 부모 자식 간이라도 양보하지 않는다"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을 배척하고 모함해 반드시 목적을 이룬 다음에라야 그만둔다"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양심을 팔아버리며,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공을 탐내고 잘못은 숨기며 죄와 책임을 남에게 미룬다" "자신과 뜻이 다르면 배척하고, 어질고 뛰어난 인물을 조정에서 내쫓는다" "두 얼굴에 세 개의 칼을 품고 다니며 음모로 귀여움을 얻으려 한다" 등으로 열거하고 있다.

역사는 나라를 망친 巨奸(거간)들의 위와 같은 행적에 대해 후세의 본보기로 자세히 전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민간의 풍자를 통해 대대로 전함으로써 준엄한 심판을 하기도 하는데, 청나라 말기 변법유신을 피로 물들게 만든 희대의 간신 원세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풍자가 전한다.

'일'부터 '칠'까지 쓰고, 그 숫자 밑에 각각 '孝悌忠信禮義廉'(효제충신예의염) 일곱 글자를 쓴다. '팔'까지의 숫자 중 '팔'자를 쓰지 않고, 四德(사덕'孝悌忠信)과 四維(사유'禮義廉恥) 여덟 글자 중 '恥'(치)자를 빼는 것이다. '팔'자를 잊고 쓰지 않았으니 '忘八'(망팔)이고, '치'자를 뺐으니 無恥(무치)가 된다. 중국어로 망팔은 王八(왕팔)과 발음이 같은데, 왕팔은 지독한 욕이고, 무치는 염치가 없다는 말이니, 그 뜻은 '염치가 없는 △△△'라는 아주 심한 욕이 되는 것이다.

원세개 같은 거간들의 奸行(간행)이야 이렇게라도 심판하지만, 일상적 삶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간행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없으니 우선은 당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역사의 심판이라는 것도 사실 그렇다. 긴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고, 그간에 겪는 고통은 누구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그러니 각자가 간성을 변별하는 능력을 기를 수밖에 없다. 특히 어려운 시대일수록 국정 책임자들의 자기 수양과 그것에 기반을 둔 辨奸(변간)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일반 국민의 고통이 줄어든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대구한의대 중어중국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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